[기고] 고향기부제로 지역문제 해결하려면 ‘자율’ 전제돼야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 시행 2년차를 맞았다. 첫해보다 관심이 줄면서 올 1분기 모금 실적은 전년 대비 70%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역문제 해결 수단으로 고향기부제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어려운 재정상황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행정안전부가 ‘지정기부 시행지침’을 일선 지자체에 보내 논란이 됐다. 이에 따르면, 지자체가 지정기부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금하려면 일정한 서식에 따라 지정기부 의제를 작성하고, 기금운용심의위원회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결도 받아야 한다.
또한 모금 결과에 따라 예산 집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어, 지자체는 행안부의 시행지침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향기부제 그 자체 업무가 과중해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이 아우성인데, 업무를 줄여주지는 못할망정 추가하는 꼴이 됐다.
고향기부제에서 기부금의 용처를 사전에 밝히는 지정기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2023년 고향납세 모금액을 1조엔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고향납세 모금이 성공적인 이유로 지정기부와 민간 플랫폼, 지자체의 자율성 보장을 들 수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23년 8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일본에서 사용처를 선택해 고향납세를 할 수 있는 지자체는 1745개(전체의 97.7%), 이 중 분야 선택까지 가능한 지자체는 1677개(94%)라고 한다. 이미 일본의 고향납세 모금에서 지정기부는 보편화된 상황이다. 지방행정연구원의 언급처럼 지정기부는 ‘기부자의 관심을 증대시키고, 지자체의 신뢰를 증진’시킨다. 특히 40여개 민간 플랫폼과 협업해 지정기부로 모금하기 때문에 폭발적인 제도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일본 지자체들은 지정기부를 통해 고향납세와 지역문제를 적극 결합한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나 지방소멸의 문제까지 고향납세로 접근해 성과를 내고 있다.
도야마현 다테야마정은 기업판 고향납세를 통해 기부자와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지역 기업가를 연결한다. 기부금은 지역 기업가에게 전달되고, 중앙정부는 특별교부금을 추가해서 지원함으로써 성과를 배가시킨다. 지원받은 기업가는 기부자에게 본인이 지역 기업가로서의 책무를 설명하며 더 많은 기부를 유도한다.
도쿄와 나고야 사이 산악지대인 야마나시현은 ‘고향 야마나시 프로젝트’를 고향납세로 추진하고 있다. 인근 대도시 주민을 초청해 교류회를 진행하고, 이들이 고향납세에 참여하게 한다. 야마나시현은 이들을 ‘미래투자가’로 부르며, 이들의 기부금을 농업 재생, 지역 만들기 등 4개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기부자의 관심을 계속 확대시키며 결국 정주로 이어지게 한다. 이때도 중앙정부가 교부금을 지원해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크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3년에 행안부가 ‘고향 야마나시 프로젝트’와 유사한 ‘고향올래’ 사업을 시작했고, 21개 지자체를 선정해 200억원을 지원했다. 문제는 이 사업과 고향기부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점이다. 지정기부 시행지침은 국비 지원사업 등에는 고향기부금을 투입할 수 없도록 설명하고 있다. 중앙정부 관점에서는 지자체 고향기부제 담당자와 생활인구 담당자가 다를 수 있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두 재원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 이를 행안부가 시행지침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국내 243개 지자체의 환경이 다 달라 지역문제의 유형과 종류가 다양함에도 지금처럼 행안부 관점에서 시행령과 시행지침으로 규제하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 지역문제 해결 수단으로 고향기부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지자체가 필요한 내용은 자율적으로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면 된다. 지방자치 30년, 이제 지자체의 자율을 인정하자.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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