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최연소·최초’ 이승원 “다양한 색을 품은 지휘자 되고파” [MZ마에스트로]
“지휘자에 따라 음악 달라지는 게 매력”
韓 최초 말코 콩쿠르 우승…기회 많아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암보(暗譜, 악보를 외우는 것)하는 데엔 3일 정도 걸려요.”
암보에 필요한 시간을 묻자 시원하게 돌아온 답변. 하지만 이내 “모차르트와 하이든에만 해당한다”고 손사레를 친다. “귀에 익숙하도록 많이 듣기, 곡과 마디의 구조를 암기하기, 악보 전체를 사진처럼 잔상으로 남기기”가 그의 암보 방법이다. 지휘를 시작한 지 이제 10년, 1950년도 이전 작품은 늘 외워서 무대에 올랐다. 이승원(34)의 지휘 신조다.
‘IQ 162의 천재, 수학올림피아드 다수 수상, 최연소 박사, 한국인 최초….’
지난 2016년 1월 방송된 ‘문제적 남자’에 등장한 그는 ‘군계일학’이었다. 이름 옆에 불일 수 있는 수사만 놓고는 ‘음악가’로는 상상도 못했던 그가 비올라를 들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그로부터 8년, 비올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이승원(34)은 다시 ‘최초’의 타이틀을 더했다. 지난 4월 세계적인 지휘 콩쿠르인 말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지휘자로의 ‘재능’을 또 다시 입증했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승원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부지휘자는 “10년 전부터 꿈꾸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비올라를 처음 손에 들었던 이승원은 음악을 하면서 수학 영재원을 다닐 만큼 학업에도 비상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엔 지휘자의 꿈을 간직했다. 비올라를 전공하며 현악사중주단 노부스콰르텟의 멤버로 활동, ‘한국인 최초’의 콩쿠르 우승(2014년 제11회 국제 모차르트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 타이틀을 안았고, 세계적인 클래식 홀에서의 연주 경험도 쌓았다.
“지휘자는 현재의 소리에 반응하며 다음 소리를 미리 제시해야 해요. 때문에 정확하게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실내악 활동을 10년 간 하면서 앙상블의 밸런스를 들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직접 소리를 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경험을 통해 늘거든요.”
하나의 악단은 총천연색을 담아낸 팔레트와 같다. 서로 다른 개성의 연주자 100명이 모인 악단을 매만져 조화로운 소리를 이끄는 것이 지휘자의 몫이다. 그가 추구하는 바에 따라 악단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색을 만들어낸다. 이승원이 지휘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지휘자는 직접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달라진다”며 “그 사람의 아우라, 성격, 인품, 호흡과 말의 속도, 말투까지도 음악에 영향을 미쳐 같은 곡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지휘자의 매력”이라고 했다.
카라얀과 아바도의 지휘 영상을 보고 자랐던 그는 2014년 한스 아이슬러대에서 다시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비올라로 ‘최연소’ 박사까지 따낸 후였다. 크리스찬 에발트는 이승원에게 “지휘의 기초를 쌓게 해준 첫 스승”이다.
“교수님은 ‘공기를 가르는 지휘, 물속에 있는 지휘, 꿀 속에 있는 지휘’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악단 없이 허공에 대고 하는 지휘인데도 제 동작을 보고는 ‘프레이즈가 뚝뚝 끊어진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죠. 지휘 동작에 음 길이와 음색, 프레이징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어요.”
당시 그는 지휘와 노부스콰르텟의 활동을 병행했다. 본격적으로 지휘를 선택한 것은 2017년. “노부스콰르텟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과 한 예고의 정기연주회 지휘가 겹쳤던 적이 있어요. 경중을 따지자면 전자가 더 중요한데 마음은 학생들과의 지휘로 가더라고요. (웃음)” 그제야 마음 속 열망을 알아차렸다. 그는 “팀 생활은 개개인의 희생이 필수인데 개인 스케줄을 병행하며 콰르텟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이후 이승원의 홀로서기는 시작됐다. 2019년엔 지휘 인생의 두 번째 스승을 만났다. 로열 콘체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끈 다니엘레 가티다. 당시 가티는 “오케스트라가 언제 너를 필요로 하고 필요로 하지 않는지 구분해 지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 손을 잡고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 2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했어요. 어떻게 보면 수치스러울 수 있지만, 제 인생을 바꾼 기억이에요.”
이승원이 선택한 지휘자의 길은 자신 앞에 놓인 여러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몸 담았던 노부스콰르텟을 떠나야 했고, 2022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임용되고선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 음대 비올라 종신 교수직을 내려놨다. 결국 ‘잘 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임용 1년 만에 수석 부지휘자로 승진했다. 12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것이다.
두 스승에게 배운 것은 지휘자로의 자기 확신이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 노래에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손이 저절로 나온다”고 말한다. 음악에 따라 손 동작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음악적 확신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 한다는 걸 스승들에게 배운 것이다.
10년 간 걸어온 지휘자의 길 위에서 콩쿠르 우승은 어쩌면 그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줬는지 모른다. 오슬로 필하모닉, 댈러스 심포니 등 세계 24개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특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연주도 많다. 오는 20일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7월 5일엔 서울시향, 이어 같은 달 11일과 19일엔 각각 부천필과 19일 대전시향의 연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또 8월엔 국립오페라단과의 만남을 통해 오페라 지휘에도 도전한다. 그는 “다양한 색깔을 품은 지휘자”를 꿈꾼다. 작곡가와 곡마다 딱 맞는 색을 내는 지휘자다.
“지휘자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보단 작곡가의 음악이 기억에 남는 지휘를 하고 싶어요. 오늘의 공연이 이승원의 음악이 아닌 작곡가에 대한 인상이 남는 연주를 하는 것이 바람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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