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징계’ 14건→0건, 선방위 제재를 제재한다
“대상조차 아닌 안건 심의해 신뢰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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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에서 최고수위인 ‘관계자 징계’를 의결한 14건을 두고 <한겨레21>이 외부 전문가 6명에게 다시 평가를 맡긴 결과다. 단 한 명도 14건에 ‘관계자 징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관계자 징계’ 이전 단계인 ‘경고’를 준 사람도 없었다. 같은 안건을 두고 어떻게 이런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을까.
선방위는 선거가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법정 심의위원회다. 2008년 제18대 총선 이후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운영되는 선방위가 이번 제22대 총선 국면에서 논란이 된 건 총선 기간 윤석열 정부에서 행한 언론 탄압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30건의 법정제재와 14건의 ‘관계자 징계’다. 이전까지 ‘관계자 징계’는 모든 선방위를 통틀어 두 차례밖에 없었다.
언론 탄압 최전선, 선방위
백선기 선방위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7차에 오는 동안 선거방송 보도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서 우리가 지침을 가지고 판단 근거를 가지고 지적하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수십, 수백 건에 대한 심의 과정은 왜 단 한 줄도 보도가 되지 않고 있는지 정말로 답답합니다.”(제17차 회의) “20대, 21대랑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22대는 저 포함해 아홉 분의 집단지성으로 결정된 겁니다.”(제19차 회의)
백 위원장의 말처럼 과거 사례와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순 없다. 또 제22대 총선 선방위에서 심의한 안건과 평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이번 선방위가 법정제재를 의결한 30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외부 평가를 다시 받아보기로 했다. 이 중 관계자 징계를 받은 14건의 안건에 대해선 6명의 언론학자(표1 참조)에게 재검토를 의뢰했다. 이들은 각자 민원 내용과 방송 내용, 의견 진술자가 출석한 회의록 등을 검토한 뒤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 처분 결과(표1 참조)를 보내왔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선방위에서 ‘관계자 징계’를 받은 14건의 안건 중 위원 6명이 모두 문제없다고 판단한 안건은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 사건 1심 무죄 판결을 다룬 문화방송(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이하 〈시선집중〉, 2024년 1월29일 방송)이다. 이날 〈시선집중〉은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했다. 민원인은 ‘사실상 판결의 당사자에 해당하는 야당 의원(이 의원)의 인터뷰 내용만 방송하고, 진행자가 편파적으로 진행했다’는 취지로 민원을 제기했다.(표2 참조)
선방위는 위원 5명(백선기·권재홍·김문환·손형기·최철호)이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고, 2명(박애성·이미나)이 ‘경고’(법정제재) 의견을 냈다. ‘행정지도’(임정열)와 ‘의결보류’(심재흔)도 있었다. 임정열 위원은 “정부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사법부에서 판결한 내용”이라며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지만, 대다수 위원은 심의 대상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김문환 위원은 “선거 운동 기간에 선거 쟁점이 안 되는 사회적 쟁점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내용 자체도 편파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백선기 위원장은 “무죄를 내린 법원의 판결, 그 사이에 수많은 변호사들의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쟁점이 되는데 굳이 한 분만 견해를 듣고 이야기한다?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승태 판결 비평은 선거와 무관”
<한겨레21>이 의뢰한 전문가 판단은 달랐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6명의 전문가 모두 문제없는 방송이라고 봤다. 이 중 5명은 선방위에서 심의할 안건 자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이탄희 의원이 양승태 판결에 대한 비평을 하는 것이 선거와 직접적 관련성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신문방송학)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6명의 전문가 모두 문제없다고 판단한 다른 안건은 문화방송(MBC) 〈스트레이트〉에서 2024년 2월25일 보도한 ‘세계가 주목한 ‘디올 스캔들’, 사라진 퍼스트레이디’ 편이다. 이 방송엔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백을 주면서 몰래 촬영한 영상과,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관련해 14명을 기소했지만 그중 김 여사는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 등이 담겼다. 민원인은 이 방송이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위장 취재를 정상 취재라고 왜곡하고, 인터뷰 대상자를 편파적으로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안건에 대해 선방위에선 5명(백선기·김문환·박애성·손형기·최철호)의 위원이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임정열 위원은 ‘행정지도’, 심재흔 위원은 ‘문제없음’, 이미나 의원은 ‘의결보류’를 했다. 권재홍 위원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최철호 위원은 관계자 징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프로그램은 하지 말아야 할 편파의 요소들을 전부 다 총집결시켜놓은 가장 심각한 편파 방송의 집결체, 종합체”라고 했다.
“선방위의 기준으로 해당 장르의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이미나)거나 “선방위에서 과한 징계로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심재흔)는 일부 위원들의 의견에도 징계 수위는 바뀌지 않았다. 백 위원장은 “특정 언론 매체의 시각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정의, 그들이 믿고 있는 올바름에 경도돼서 다른 것은 혹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지에 대한 지적”이라고 했다.
이번 건에 대해서도 6명의 외부 전문가 중 4명은 선방위 심의 대상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미디어영상홍보학)는 “선방위에서 상정할 안건이 아니다. 만일 선방위가 다룬다면 대통령이 선거기간에 여당의 선거운동을 하기 때문에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즉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권혁남 교수는 “탐사보도는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이나 의혹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팩트가 잘못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건 분류’ 손놓은 방심위의 업무태만
외부 전문가 6명의 평가를 모두 더한 결과 ‘문제없음’은 44건, ‘행정지도’는 33건, ‘법정제재’는 7건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제없음’ 44건 중 절반이 넘는 26건의 이유가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답한 점이었다. 이번 선방위는 어떤 근거로 심의 대상으로 볼 수 없는 안건들을 심판대에 올렸을까. 선방위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선방위는 선거방송과 관련한 사항 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 부의하는 안건을 심의하도록 되어 있다. 즉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중 1차 분류 과정을 거쳐 선거방송 관련 안건만 선방위로 넘겨야 하는 셈이다. 혹은 선방위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안의 경우에도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방심위는 분류 작업을 하지 않았다. 야당 추천으로 2021년 7월부터 방심위에서 방송 심의를 하고 있는 김유진 위원은 “선방위 안건은 방심위 위원장이 부의를 하거나 선방위 위원들이 직접 부의하는데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이 (선거와 관련된 안건을 분류하는) 역할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며 “민원인의 취지를 존중한다며 전부 선방위로 넘겼다. 그렇게 자기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위와 선방위 모두 경험이 있는 심영섭 교수는 “방심위에서 접수된 사안 중 선거방송에 해당하는 것을 분류해 넘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태만”이라며 “이전에도 방심위에서 방송심의소위원회 관할 안건을 선방위로 넘긴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방심위가 아예 위험을 외주화한 안건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접수된 민원 대부분이 친정부 성향 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와 국민의힘에 몰렸다는 점이다. 특히 선방위 위원 중 권재홍 위원은 공언련의 이사장이고, 최철호 위원은 전 공동대표여서 이해충돌 문제도 있다. 방심위 직원들은 이 두 위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선방위 위원들은 “이러이러한 민원이 들어왔다”거나 “민원인은 이러이러하게 생각한다”며 적극 심의에 나섰다. 의견진술을 위해 참석한 제작자들에겐 민원을 근거로 꾸짖기도 했다.
“이 정도 민원이 들어오고 했으면 보통 상식을 가진 방송인이라면 ‘저희가 순간적으로 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고 유감을 표하고 사과하는 게 마땅한데 (…) 대단히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지금 제작을 하기 때문에 많은 민원이 생기고 문제가 되는 겁니다.”(손형기 위원, 제13차 회의록 중에서)
원용진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명예교수는 민원인의 주장도 적극 검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방위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합니다. 민원인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거든요. 민원인 자체도 토론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어요. 심의의 최종 목표가 공익이라면 사익에 치우쳐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을 전제했어야 해요.”
그러나 선방위는 민원인에 대한 검증은커녕 후반부엔 위원이 직접 나서 안건을 상정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추천으로 선방위원으로 임명된 최철호 위원은 국민의힘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MBC 〈뉴스데스크〉 미세먼지 관련 보도(표2 참조)를 직접 안건에 올렸다. 그러면서 “공적 심의에 개인 의견을 반영할 이유가 없다”며 의사결정에도 참여해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처분 기준 없고 ‘셀프 민원’ 심의
선방위는 이런 방식으로 선거와 무관한 안건을 끊임없이 심의하며 스스로 공정성을 훼손시켰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결국 (선방위의) 제일 큰 문제는 심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갖고 와서 심의했던 것”이라며 “(외부에서 보면) 오해받을 수 있는 요소이고 선방위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때마다 많은 안건을 처리하다보니 정작 총선에 가까운 2024년 3∼4월 안건은 처리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방심위는 5월 전체회의에서 선방위가 처리하지 못한 안건을 처리하기로 결정했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024년 4월 선방위 위원 5명(백선기·권재홍·김문환·손형기·최철호)을 선거와 관련없는 방송까지 심의했다는 등의 이유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외부 전문가들은 법정제재부터 행정지도까지 처분 수위를 나누는 별도의 기준이 없는 점도 이번 선방위 폭주 원인이라고 봤다. 선거방송심의 규정엔 공정성과 객관성 등 심의의 근거가 되는 기준은 있지만, 처분 수위에 대한 기준은 없다. 이번 선방위 위원들도 활동 초기 징계 수위에 관해 잘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2차 회의 당시 선방위 지원단으로부터 각 징계 수위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이 전부다. 최철호 위원은 당시 행정지도가 방송사에 불이익이 있는지,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없는지만을 확인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의견제시를 하는 게 맞는지 권고가 맞는지 주의 이상의 법정제재를 주는 것이 맞는지 정말 어려운 문제”라며 “3년짜리 방심위원들도 무리인데 5개월짜리 임시 조직에서 갑자기 사람들을 모아 심의를 제대로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선방위를 폐지하고 방심위에서 심의를 도맡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권혁남 교수는 “(처분 수위를 정하는) 기준도 없고 심의 기준도 공정성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굉장히 애매하다”며 “제22대 국회에서 법조문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향 교수는 “공정성이나 객관성은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무 자르듯 판단할 수가 없다”며 “이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왜곡된 방식으로 이 규범들을 추구하고 있고, 대표적인 게 양적 균형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방식은 부작용이 많은데도 이번 선방위에선 대부분 공정성을 바탕에 두고 심의했다”며 “(사안에 따라) 한쪽의 이야기를 명백하게 더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선방위의 판단은)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방위는 ‘입틀막 위원회’”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법정제재 30건을 전부 검토한 권혁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위원들이 작정하고 들어온 것 같아요. 30건 중 야당에 불리한 보도 내용을 심의한 것은 2건에 불과하고 28건이 여당에 불리한 내용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여당에 불편하거나 불리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 막는 심의라는 점에서 ‘입틀막 위원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번 선방위에서 법정제재를 받은 보도나 프로그램 전체가 잘못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권혁남 교수처럼 법정제재 30건을 전부 검토한 심석태 교수는 “선방위가 워낙 말도 안 되는 제재를 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방송에 문제가 뭐였는지는 봐야 한다”며 “(특정 프로그램의 경우) 선거 국면에서 어떤 자세로 방송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원칙을 망각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3년 12월13일 방송된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이나 2024년 1월31일과 2월1일 방송된 대전MBC 〈뉴스데스크〉의 경우 6명의 외부 전문가 모두가 행정지도~법정제재를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심석태 교수는 “(법정제재를 받은) 이들을 아무 잘못 없는 억울한 피해자로만 보면 모든 게 정파적인 논의로 흘러버린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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