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과감한 對美 미래 투자…트럼프 리스크, '현지화'로 넘는다
(스프링힐·클라크스빌<美테네시>=뉴스1) 김현 특파원 = LG가 미·중 간 무역 갈등과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 속에도 세계 최대 전기차 및 생활가전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한 미래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는 특히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에 대비한 전략 마련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중 갈등·11월 美 대선 등 LG 앞에 놓인 불확실성 심화
현재 LG가 처한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미·중 간 갈등 및 경쟁 격화,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 결과를 알 수 없는 미국 대선까지,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LG의 주력 사업 분야 중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인해 성장세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 대선에서 미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통상 환경 등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은 LG가 집중 공략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등을 겨냥해 '10% 보편적 관세' 공약은 물론 전기차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온 연장선상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관련 보조금 폐지 및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 등도 공약으로 내세운 상태다.
◇과감한 미래 투자…시장 선도 및 선점 포석
이 같은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심화에도 불구하고 LG는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3일(현지시간) LG그룹에 따르면, LG는 지난 2018년 12월 LG전자가 테네시주(州) 북부 클라크스빌에 생활가전 생산공장을 가동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LG화학이 근처에 미국 최대 양극재 공장 착공식을 개최한 뒤 현재 부지를 다지는 기초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클라크스빌에서 남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스프링힐에는 LG에너지솔루션(엔솔)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의 제2공장이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얼티엄셀즈는 이미 2022년 11월 오하이오에 1공장을, 미시간에도 제3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같은 LG의 대미 투자액도 상당하다. 얼티엄셀즈 제 1·2·3 공장의 총투자액은 9조원에 달하고, LG화학 테네시 공장엔 1단계로 2조원을 투자했다. LG전자 테네시 공장은 누적 투자액이 4억5800만달러(약 63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현재 LG엔솔이 운영 및 건설 중인 현대차그룹·혼다·스텔란티스 등과 합작 공장과 미시간·애리조나주에 운영 및 준비 중인 단독 공장 등까지 합하면 LG의 대미 투자액은 많이 늘어난다.
LG가 미국에 이처럼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불확실한 대외 여건을 극복하고 미래의 주도 산업과 시장을 선도·선점하기 위해서다.
◇LG엔솔, 전기차 시장 캐즘 우려에 "장기적 성장세 유지될 것"
우선 LG엔솔은 캐즘 우려에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각오다.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일시적이며, 북미 시장을 비롯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본격 성장기에 돌입하는 때가 도래하면 선제적 진입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금의 투자가 오히려 압도적인 기술 리더십 및 고객가치 역량을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30일 언론에 최초 공개한 얼티엄셀즈 제2공장(테네시주 스프링힐)은 당초 목표한 총 50기가와트시(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라인을 계속 증설하고 있다. 50GWh는 1회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순수 전기차 약 6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김영득 제2공장 법인장은 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회사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특히 아직 시장침투율이 낮은 북미에서 성장이 지속해서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일시적인 캐즘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LG엔솔은 현재 추진 중인 각종 공장 등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오는 2026년 북미지역 생산 능력이 약 300G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글로벌 배터리 기업과 비교해 최대 규모다.
◇LG화학, 북미 전진기지 美최대 양극재 공장 건설…LG전자도 지속 투자
LG화학은 배터리 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을 위해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에 1단계로 2조원을 투자해 연산 6만톤 규모의 미국 최대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착공한 이 공장은 연면적 약 7만6천㎡ 규모다. LG화학은 2026년 6월부터 양산을 시작하고 2028년 4월까지 고성능 순수 전기차(500km 주행 가능) 약 60만대분에 해당하는 연산 6만t의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를 생산할 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테네시 공장을 북미 전진기지로 육성해 차별화된 고객가치 창출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북미 고객사 전용 공장인 테네시 공장에서 고객사와 개발부터 공급망까지 협력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단 테네시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극재는 대부분 얼티엄셀즈에 공급될 전망이다. 다만, 올해 2월 GM과 체결한 양극재 공급계약은 GM과의 직접 계약인 만큼 GM의 다른 전기차 프로젝트에도 LG화학의 양극재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LG화학은 향후 차세대 양극재 제품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고객 수요 증가 추이를 보고 생산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LG화학은 올해 2월 GM과 2035년까지 25조원 이상의 대규모 장기 공급계약을, 지난해 10월에는 토요타와 2조9000억원 규모 북미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LG전자도 지난 2018년 말부터 가동한 테네시 생산공장을 계속 최첨단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테네시 공장은 연면적 약 9만4000㎡ 규모로, 4개 생산 라인을 통해 세탁기 120만대, 건조기 60만대, 일체형 워시터워 35만대의 연간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테네시 공장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물류 자동화와 관제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테네시 공장의 자동화율은 현재 64%로, 연말까지 68%, 내년 초에는 7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트럼프 등 美보호무역주의 대응 핵심 전략은 '현지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경향에 대응하는 LG의 전략은 '현지화'다. 미국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이 같은 현지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
LG의 현지화 전략이 빛을 발한 곳은 LG전자 테네시 공장이다.
LG전자는 미국 경쟁사인 월풀의 견제에 맞서 미국 현지 공장 건립을 추진하던 중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짙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2017년 8월 테네시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첫 임기 당시 월풀을 돕기 위해 2018년 1월 한국산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고, 이에 LG전자는 공장 준공을 서둘러 2018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세이프가드는 지난해 2월에 종료됐지만, LG전자 등 한국 기업을 제소했던 월풀의 의도와 달리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손창우 LG전자 테네시 공장 법인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클라크스빌 공장에서 열린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가장 큰 장점은 근접 생산이었다"며 "팬데믹때 수요가 급증했는데, (테네시) 공장이 없었다면 (미국의) 수요 증가 대응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통상 환경이 악화할 경우 현지화 전략에 따라 세탁기와 건조기 외에 냉장고와 TV 등 다른 생활가전도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손 법인장은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대응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됐을 때 대응 전략을 조금씩 다르게 준비하고 있다"며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통상정책을 비교해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희 입장에선 더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공장) 부지가 상당히 넓다. 공장동 3개를 추가로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서 "만약 통상 이슈가 생겨서 또 다른 생산지를 (마련)해야 한다면 다른 제품들을 생산할 수도 있다"며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할 계획들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LG전자는 테네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과 관련한 리스크에도 대비하고 있다. 미국이 부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를 위해 현재 LG전자의 멕시코 공장 주변에 있는 협력사에서도 부품을 조달하는 등 관세나 물류비 등을 고려해 부품 조달처의 다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LG엔솔이 얼티엄셀즈 등을 통해 운영 및 준비 중인 공장들과 LG화학의 테네시 양극재 공장 역시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다.
LG엔솔은 GM 등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LG화학은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현지에서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며 "현지에서 고객사와 양극재 개발 단계에서부터 함께 소통하며 고객 맞춤형 양극재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LG의 투자, 한미 협력 대표 사례 부각…LG하이웨이·라이프스굿 웨이도
LG의 과감한 대미 투자는 한미 협력의 대표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얼티엄셀즈 2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은 GM의 3세대 신규 전기차 모델인 캐딜락 '리릭'에 탑재됐다. 리릭은 하위 트림 가격이 약 5만8000달러(약 8000만원)에서 시작하는 고급 전기차다. LG 관계자는 "리릭이 1억에 가까운 최고급 차량이기 때문에 LG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공장의 GM 측 최고책임자인 크리스 드소텔스 공장장은 "LG에너지솔루션은 오랜 양산 경험과 차별화된 기술 리더십을 갖춘 최고의 파트너"라며 "최근 하이앤드(최고급)급 차량 리릭의 성공적인 출시는 양사의 오랜 파트너십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의 투자는 미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테네시주만 놓고 보면 얼티엄셀즈 2공장에서 1700명(증설 완료시), LG전자 테네시 공장 900명, LG화학 양극재 공장 400명 등 각각 고용 창출이 이뤄졌거나 기대되고 있다.
이에 테네시 주정부는 LG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도로와 전력 등 인프라 구축도 지원했다.
김영득 얼티엄셀즈 2공장 법인장은 "주 정부에서 공장 증설이 모두 완료된 이후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제공하기 위해 전력 시설을 증설해 줬다"고 밝혔다. 테네시 주정부는 지난 2018년 LG전자 테네시 공장 가동을 기념해 공장으로 진입하는 5.5㎞ 길이의 고속도로에 'LG 하이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테네시 공장 인근 도로 역시 LG의 슬로건인 '라이프스 굿(Life’s good) 길'로 명명됐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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