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지하철 정비노동자 7명 혈액암 ‘집단 발병’

전종휘 기자 2024. 6. 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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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지축차량사업소 검수팀에서 일하는 황수선(54)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귀 밑에 작은 혹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서울 지하철 정비노동자의 병력을 추적한 결과, 황씨처럼 혈액암에 걸려 투병중이거나 숨진 이들이 7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4일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과 서울교통공사는 정비 노동자 가운데 근속 15년 이상 83명을 대상으로 올해 안에 혈액암 진단을 위한 혈액검사를 하기로 지난 3월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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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 정비과정서 벤젠 등 사용…2명 이미 산재 승인
노동자 혈액검사 나섰지만 하청노동자는 확인 어려워
구의역 산재 사망 8주기 다음날인 5월29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살 하청 노동자 김씨의 생일기억식이 열려 조성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이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교통공사 지축차량사업소 검수팀에서 일하는 황수선(54)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귀 밑에 작은 혹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했다. 1997년 입사한 황씨는 2011년까지 전동차 중정비 업무를 하고 그 뒤론 경정비 업무를 했는데, 문득 자신이 중정비 하던 당시 작업과정이 떠올랐다.

그는 전동차 회전기의 트랙션 모터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위해 필요한 베어링을 시너나 경유 등에 담근 뒤 붓으로 닦아내거나 공기압축기로 불어내는 세척 작업과 유성페인트 도색 작업을 많이 했다. 유기용제가 사방에 날리는데도, 마스크도 안 쓰고 환기시설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작업환경 개선이 이뤄지기 시작한 때는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13년께부터였다. 황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혈액암 진단받았을 때 ‘드디어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씨보다 앞서 전동차 중정비 일을 하던 이들 가운데 유사한 질병에 걸린 이들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서울 지하철 정비노동자의 병력을 추적한 결과, 황씨처럼 혈액암에 걸려 투병중이거나 숨진 이들이 7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4일 밝혔다. 황씨를 포함해 지축차량사업소 4명, 군자차량사업소 2명, 신정·창동차량사업소 1명 등이다. 이 가운데 2명은 이미 업무상질병(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2017년 산재를 인정받은 송아무개씨의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 등의 유해물질의 노출 수준이 낮다고 하더라도 작업환경 개선이 이뤄지기 전인 과거에 근무하던 작업환경에선 더 높은 수준으로 벤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도장·세척 작업을 장기간 수행하면서 각종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돼 업무와 상병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적혀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과 서울교통공사는 정비 노동자 가운데 근속 15년 이상 83명을 대상으로 올해 안에 혈액암 진단을 위한 혈액검사를 하기로 지난 3월 합의했다. 그러나 1∼4호선 운영 서울메트로와 5∼8호선 운영 서울도시철도공사가 2017년 5월 현재의 서울교통공사로 합쳐지기 전까지 도시철도공사 쪽 정비 업무는 대부분 외주업체가 담당했다. 서울시는 2016년 5월 청년 하청노동자 김아무개군이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작업중 숨진 사건 이후 2017년 12월까지 외주업체 소속이던 정비 분야 노동자 1100여 명을 직접고용 정규직화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퇴직한 이들은 공사도, 노조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노조는 서울교통공사가 인력감축을 명분으로 정비업무 외주화를 추진하면 노동자 안전이 더 위협받을 것이라 우려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재 1만6300여명 직원 가운데 2212명을 2026년까지 차질없이 줄이겠다고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 있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회사는 경정비 노동자 2300여명 가운데 열차 고장 때 긴급 조처하는 ‘기동검수’ 노동자 200여명 대부분을 외주로 돌리고, 검수·정비 주기를 늘리는 식으로 인원을 줄이려 한다”며 “외주화가 이뤄면 정비노동자들이 건강에 나쁜 작업환경에 놓이기 쉽고, 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기동검수 외주화는 현재 계획 단계로, 직원 노동환경개선에 중점을 두고 경영개선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고, 새 전동차 도입에 따라 검사항목 자체가 줄어들어 기존 검사주기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며 “직원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에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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