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8억서 4조4085억 4년간 11배...헌재, 종부세 합헌 이유 ‘납득’ 안돼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6. 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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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얼마전 종합부동산세를 합헌으로 판단한 결정문을 주말에 꼼꼼히 읽어봤다. 이번 선고 대상인 2020·2021년 귀속분 종부세가 많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준 점을 감안하면 ‘문제없다’는 결론에 이른 과정은 좀 아쉽다. 헌재가 종부세 입법 목적의 정당성만을 강조한 채 문재인 정부 때 막대한 종부세 피해 상황을 심각하게 헤아렸는지 단서를 찾기 힘들다. 종부세법이 당초 취지대로 ‘집값 안정’이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는데 그에 대한 헌재 판단도 없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이 종부세 규탄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종합부동산세의 납세 의무와 기준 등을 정한 종합부동산세법, KBS 수신료 분리 징수의 근거 조항인 방송법 시행령,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에게 대체 복무 의무를 부여하는 병역법·대체역법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을 비롯해 헌정사 최초 ‘검사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2024.5.30 [이승환기자]
헌재는 종부세가 ‘일정 가액 이상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부동산 가격 안정 도모와 실수요자 보호’라는 정책 목적을 위해 정당하다고 봤다. 또 주택 수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소재 여부에 따라 세율 등을 차등하는 것도 적합하다고 했다. 문제는 대상자의 세(稅) 부담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헌재는 그 근거로 1세대 1주택자의 경우 5억원 추가 공제, 고령자· 장기보유자 세액 공제 등을 들었다. 더 나아가 여러 특례들로 인해 ‘1세대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을 완화시켰다’는 표현도 썼다. 하지만 1주택자 종부세 대상자는 2017년 3만6000명에서 2020년 12만5000명, 2021년 15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종부세율도 0.5~2.7%에서 2020년분부터 0.6~3.0%로 올라 2017년 151억원이던 1주택자 종부세액은 2020~2021년 1223억원에서 2341억원으로 2배 가량 됐다. 그런데도 몇가지 특례 조치를 이유로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이 완화됐다는 평가가 과연 온당한가. 헌재는 대상자 확대와 세율 인상에 따른 국민 체감 부담을 잘 살피지 않았다.

특히 다주택자의 경우 거의 탈취 수준으로 종부세가 부과됐지만 1주택자와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헌재는 봤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3주택 이상자에 대해 최대 6%까지 세율을 높여도 과잉금지 원칙과 조세평등주의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근거는 투기 수요와 주택 분양 과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다. 하지만 ‘세금 폭탄’을 맞은 다주택자는 왜 3~4%가 아닌 6%나 돼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헌재는 적정한 종부세율 기준에 대한 설명 없이 정책상 필요하니 정부가 재량껏 높여도 문제 없다는 식이다.

정부 종부세 ‘다주택 중과’ 폐지 검토 올해 세법개정안에 담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의 우선순위로 다주택 중과세율 폐지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현행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적용되는 중과세율(최고 5.0%)을 기본세율(최고 2.7%)로 하향조정하는 방안이다. 사진은 2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상담 안내문. 2024.6.2[이충우기자]
집 가진 게 족쇄가 돼서 재산세에다 종부세까지 더해진다면 일반 가정에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무엇보다 2021년분 급등한 종부세가 정부의 정책 폭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을 헌재는 간과했다. 종부세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이 곱해져 산출되는데 이들 모두 상승했다. 불가피한 대외 변수 대신 정부가 일부러 공격적으로 올린 결과다. 문 정부는 공시가를 시세에 맞춰 높였고, 공정시장가액비율도 계속 올라 2021년엔 95%까지 뛰었다. 2021년분 세율을 결정한 전년도 7·10 부동산대책은 소득주도 성장이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만큼이나 최악이었다.

문 정부는 세금을 올려 부동산을 잡는 방안을 수차례 내고도 집값이 고공행진 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2020년 7월 2일 청와대로 긴급 호출했다. 많은 이들이 김 장관을 경질하거나 정책 변화를 기대했지만 문 대통령은 잘 하고 있다면서 더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8일 후 나온 7·10 대책은 종부세는 물론 취득세와 양도세 모두 크게 올렸다. 조정지역 2주택자와 3주택 이상자 종부세율은 0.6~3.2%에서 2019년(0.8~4.0%), 2020년(1.2~6.0%) 연속해서 올랐다. 다주택자는 양도세가 20~30%가 가산돼 3주택 이상이면 지방세 포함 최대 82.5%나 됐다. 종부세를 피하려 집을 팔려고 해도 양도세가 많아 내놓지도 못한데다 주택 수에 따라 중과된 취득세 때문에 거래 절벽이 됐다.

한마디로 국가가 집 가진 국민을 상대로 ‘세금 폭력’을 가한 것이다. 2020년 주택분 종부세 과세액은 1조4590억원에서 2021년 4조4085억원으로 3배가 넘었다. 2017년(3878억원)과 비교하면 4년 간 11배나 급증한 것이다. ‘징벌적 과세’란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종부세 취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종부세 인상과 대상 확대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많지 않다. 종부세 납부자는 상당한 부담으로 느꼈는데 헌재는 과잉금지·조세평등·신뢰보호 원칙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다. 간극 차이가 상당한데 헌재는 납득할 이유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달 헌재가 민법상 ‘유류분’ 위헌 소송에서 입법 목적을 인정하면서도 고인과 피상속인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을 내렸듯이 종부세도 국민이 입은 피해를 면밀히 따져봐야 했다.

종부세를 포함한 부동산 세율 인상과 다주택자를 벌하는 분위기에서 많은 국민은 똘똘한 한 채를 찾아다녔다. 강남과 수도권만 선호하는 통에 그곳 집값만 급등했다. 문 정부 때 종부세는 세입을 늘렸지만 부동산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라는 소기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국민 부담만 키워놓은 법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나마 정치권에서 종부세 폐지를 논의한다고 하니 제대로 한번 해보기 바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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