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전 공지, 4분 발언으로 끝난 대통령 국정 브리핑
경향신문·동아일보 등, 박정희 정권 '포항 석유 발견' 발표 해프닝 빗대어 우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 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대국민 소통 강화 등 명목으로 도입한 '국정 브리핑'이라지만,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의아함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대통령 국정 브리핑'을 갖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이는 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 할 수 있다”고 의미를 설명한 뒤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쳐 금년 말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에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진행된 대통령 국정 브리핑 일정은 당일 갑작스럽게 공지됐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브리핑이 시작되기 약 8분 전, 주제나 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관련 일정을 출입기자들에게 공지했다. 이에 생중계를 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한 방송사 출입기자들 측에서 당혹스럽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실은 안덕근 산업부 장관의 브리핑 배석 사실을 약 1시간 전에야 파악했다고 한다.
국정 브리핑이라는 형식이 어느 정도 예고돼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깜짝 이벤트' 같은 진행 방식이 더욱이 의아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출입기자들과의 '김치찌개 만찬'에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문답)이 아쉽게 마무리됐는데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달에 한두 번 특정 이슈에 대한 국정브리핑을 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나 고민도 됐다”고 말했다. 같은달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여당과 소관 부처 장관 등에게 대국민 정책 설명을 당부하면서 “저 역시도 브리핑룸에 가서 설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은 지난 4월 총선에서의 여당 참패를 계기로 나선 소통 방식 개선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석유·가스 채굴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발표를 하면서 직접 질문도 받지 않은 브리핑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는다는 그간의 비판을 해소하지 못했다. 631일 만에 진행하면서 질의응답을 충분히 받지 않았다고 평가 받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채 상병 특검' '김건희(윤 대통령 배우자) 특검' 등 현안 언급 없었던 '김치찌개 만찬' 등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언론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에 여러 아쉬움을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선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포항 석유 발표' 해프닝을 언급하며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4일 동아일보 사설은 “총선 참패 이후 소통 쇄신 차원에서 시작한 브리핑이라면 복잡한 이슈를 두고 종합적 시각에서 설명하며 국민 이해를 구하는 자리여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브리핑 시작 8분 전에 내용도 알리지 않은 채 일정을 공지했고, 대통령은 깜짝 발표 후 4분 만에 질문을 따로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며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지만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난 적이 있다. 그때와 지금은 기술 수준이 다르겠지만 매장량과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같은날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해 “총선 참패를 반성하며 시작한 국정 브리핑에서 심각한 안보·경제·정치 현안을 두고 자칫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는 발표를 선택한 점은 아쉽다”고 지적한 뒤 “10월 유신으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부가 유전 개발에 매달린 것처럼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윤석열 정부가 혹여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간 국정 실패를 만회하려 시작한 국정 브리핑 첫 사례가 성급할 수 있는 유전 발표인 것도 유감스럽다. 윤 대통령이 발표만 하고 질문을 받지 않은 것도 진정한 소통 의도라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영일만> 제목의 '만물상'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해 신문들이 1면 머리 기사로 보도했지만, 나중에 이것이 시추 과정에서 윤활유로 투입했던 경유가 퍼올려진 것으로 드러났던 일화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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