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닙니다” 조코비치의 경이적인 회복 탄력성은 단연 역대 최고

김기범 2024. 6. 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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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 조코비치가 4일(한국시각) 프랑스오픈 16강전에서 무릎 통증 속 경기를 치르고 있다.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지난 2일 4시간 29분이 넘는 단식 32강전을 마친 프랑스 현지 시각은 새벽 3시를 지나 있었다. 미디어 인터뷰를 마치고 회복 마사지를 받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시각. 겨우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오후였고, 테니스 훈련은 엄두도 못 낸 상태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수중 회복 훈련 정도만 실시했다. 그리고 또 잠자리에 들어서 '꿀잠'을 잤고 눈을 뜨고 16강전 출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이는 37세로 테니스 황혼기를 이미 지난 조코비치가 프랑스오픈 8강 진출 뒤 기자회견에서 "도대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이었다. 조코비치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초인적인 회복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조코비치는 4일 새벽 4시간 39분이 넘는 사투를 벌인 끝에 5세트 경기에서 세계 27위 세룬둘루(아르헨티나)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승리로 그는 메이저 대회 통산 최다승인 370승을 기록하며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보유하고 있던 종전 기록을 뛰어넘었다.

조코비치가 16강전에서 역전승을 거둔 건 불가사의에 가까운 일이었다. 체력적인 문제는 둘째이고, 경기 도중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2세트 중반 조코비치는 수비하다 클레이 코트 바닥에서 미끄러지면서 무릎에 통증을 호소했다. 세룬둘루의 평범한 공격에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게 된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는 2세트를 악전고투 끝에 5-7로 내줬고, 3세트에서도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해 3-6으로 패했다. 누가 봐도 패색이 짙었다.

세트 스코어 1-2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조코비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살린 건 진통제였다. 진통제를 복용하고 조심스럽게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4세트 들어 조코비치의 경기력은 서서히 회복됐다. 통증이 거의 사라졌고, 5세트로 접어든 조코비치는 다시금 거짓말처럼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신보다 12살 어린 세룬둘루를 향해 속사포 같은 백핸드 공격을 퍼부어 결국 승부를 뒤집었다.

조코비치가 세룬둘루와의 16강전에서 놀라운 유연성으로 점수를 획득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2세트에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물리치료사에게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무릎 통증이 경기에 영향을 미쳤고, 두 세트 동안 긴 랠리를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세룬둘루가 기습적인 드롭샷이나 방향 전환 공격을 하면, 달려가서 받아내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경기의 어떤 시점에서는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며 부상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3세트가 끝난 뒤 진통제를 최대치까지 먹었다. 의료진은 30분에서 45분 정도 뒤 약효가 나올 것이라고 했고, 4세트 막판이 그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정말 몸이 좋아졌다. 움직임의 제약이 없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5세트는 전체적으로 전혀 통증이 없었다."며 부상을 딛고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비결을 설명했다.

조코비치는 지난 2012년 호주오픈에서 두 경기 연속 5시간 넘는 사투를 벌이고도 우승컵을 차지했다.


조코비치는 이전 라운드에서 5세트 접전을 겪거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을 때, 상식을 벗어나는 회복력을 보이며 승리를 쟁취하곤 했다. 2012년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는 준결승전에서 앤디 머리와 5세트 접전을 벌이고, 이틀 뒤 결승전에서 라파엘 나달을 6시간 가까운 사투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삼십 줄을 넘어선 뒤에도 조코비치의 '회복 탄력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2021년 호주오픈 32강전에서는 걷기조차 힘든 복부 부상 속에서도 테일러 프리츠(미국)와 5세트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고, 대회 우승까지 휩쓸었다.

하지만 37살에 접어든 조코비치가 여전히 메이저 대회 5세트 경기를 두 번 연속 치르고도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을 체력과 정신력에서 압도하는 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조코비치가 세룬둘루와의 경기 도중 물리치료사에게 무릎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미국 테니스의 전설 존 매켄로는 유로스포츠와 인터뷰에서 "50년 동안 테니스에 몸담았고 30년 넘게 해설을 하고 있지만, 조코비치 같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조코비치는 새벽 3시에 경기를 마쳤고, 다음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1에서 4세트도 4-2로 뒤져 있었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어떻게 하든 이겨냈고 5세트에서 2-0 리드를 잡았다가 놓치고도 끝내 승리했다. 진짜 대단한 일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경기 연속 4시간 30분에 가까운 접전을 펼친 조코비치의 다음 상대는 세계 7위 캐스퍼 루드(노르웨이)다. 지난해 준우승자이자, 이번 대회도 우승 후보 다섯 손가락에 드는 만만치 않은 적수다. 조코비치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고, 내일 이후 다시 코트 위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뛸 수 있길 바랄 뿐이다."고 8강전 출전 여부에 대해 일단 신중하게 접근했다.

하지만 37세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24회 우승하고 8강 이상 진출 기록 또한 역대 최다인 59회를 기록하는 동안, 조코비치가 부상으로 인해 다음 라운드에 기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에서 전인미답의 메이저 통산 25회 우승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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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kikiholi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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