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몽골기병’ 앞에 무력한 與 [김지현의 정치언락]
개원 즉시 몽골 기병 같은 자세로 민생 입법, 개혁 입법 속도전에 나서겠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2대 국회 임기 첫날인 5월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국정이 더 이상 퇴행하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국회가 가진 국정 감시 견제 권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대표가 언급한 ‘몽골 기병’은 13세기 그 특유의 기동력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했던 기마군단입니다. 불과 25년 만에 아프리카 전체 크기와 맞먹는 3100만㎢ 제국을 건설했다 하죠. 로마군이 400년에 걸쳐 차지했던 것보다 더 광활한 면적을 어마어마한 ‘속도전’으로 확보한 겁니다. 당시 몽골의 병력 규모는 10만 명에 불과했다는데, 부대 전원이 보병 없이 기병이었던 데다 병사 개개인이 자기 식량과 장비를 셀프로 싣고 원정에 나섰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합니다. 당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몽골 기병에 대해 “어찌나 신속하게 갈아타는지 조금도 휴식하지 않는다”, “위급상황이 닥치면 불을 피우거나 고기를 먹지 않고 열흘 동안 계속해서 행군했다”고 적기도 했죠.
이 대표는 자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2021년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몽골 기병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당시 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제대로 출범도 못 한 점을 언급하며 “몽골 기병대였으면 이미 나와 진격해 점령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스권에 갇혀있던 자신의 지지율이 ‘매머드급’ 선대위 탓이라고 본 거죠.
그 뒤로 그는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몽골 기병론’을 역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충남 논산 시장 연설에서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가겠다”며 “몽골 군인 10만 명이 유럽과 아시아를 휩쓴 힘이 뭐겠느냐. 빠른 속도, 거기에 더해 단결된 힘”이라고 했습니다. 속도감 있게 대대적으로 당 쇄신에 나서겠다는 예고였습니다. 실제 이 발언 직후 당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던 선대위를 ‘친명 별동대’ 중심의 슬림한 구조로 개편했고요.
● 대선 후 2년 반 만에 다시 나온 ‘몽골 기병론’
그리고 22대 국회 개원에 발맞춰 2년 반 만에 다시 ‘몽골 기병론’을 꺼내 든 겁니다. 이 대표가 특히 똘똘 뭉쳐 ‘속도전’에 나서라고 주문한 건 ‘국회 원 구성’, 그리고 ‘당론 입법’입니다.
민주당이 언제부터 그렇게 국회법을 잘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국회법에서 정한 원 구성 법정시한인 6월 7일까지 국민의힘과 협상이 되지 않을 경우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범야권은 22대 국회에서 이미 192석을 확보했다. 솔직히 여당 없이도 국회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상임위별로 야당 의원 숫자가 이미 개의 정족수인 과반을 넘기 때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없어도 물리적으로 전혀 상관 없다는 겁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에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럴 거면) 여야 간 협상은 왜 하나. 그냥 원 구성 시한에 맞춰서 민주당 마음대로 결정하지, 왜 협상하자는 건가”라며 “우리에게 민주당의 들러리가 돼 달라고 하는 것인가”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무력하게 들립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에서 반드시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면 국민의힘이 국회의장직을 맡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던데 이건 또 무슨 뒷북 화법인가 싶습니다.
● ‘몽골 기병대’ VS ‘웰빙 정당’
다음날에야 국민의힘이 뒤늦게 내놓은 당론 법안은 무려 5개 분야 31개였습니다. 내용도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부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를 총망라했더군요. 이를 두고 한 민주당 보좌진은 “솔직히 지금 국민의힘은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도 쉽지 않은 구조인데, 저렇게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 자체가 무책임한 것”이라며 “여당으로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국정과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전혀 안 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행태”라고 꼬집더군요.
이 말마따나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앞으로 기댈 수 있는 건 국민 여론 뿐인데, 지금같이 해서는 여론의 ‘백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최근 번역돼 나온 신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패배를 인정해야 재집권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던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강서구청장 선거부터 이번 총선까지 연패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합니다.
몽골 기병은 기동력뿐 아니라 잔인성으로도 유명합니다. ‘삼국유사’ 속 황룡사 탑을 불태웠던 몽골 기병의 공격은 그야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었다고 표현돼 있죠. 대놓고 몽골 기병처럼 싸우겠다는 거야(巨野)의 총공세 앞에서 여당이 너무 무기력한 건 아닌지, 과연 싸움이 되긴 할 지 우려스럽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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