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영·이민기 매력적인 '크래시', 잘 나가는 이유 있었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6. 4. 11:3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통범죄가 약해? ‘크래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래 가지고 범인 잡을 수 있겠어요? 머리만 좋으면 뭐해? 몸이 안 따라 주는데. 경찰이 돼 가지고 늦으면 되겠어요? 그럼 사람 구할 기회도 놓친다고." ENA 월화드라마 <크래시>에서 교통범죄수사팀 민소희(곽선영) 반장은 차연호(이민기) 경위에게 호신술로 유도를 가르치며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차연호 경위는 연쇄강간범이 침입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해자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떠올린다.

어찌 보면 범행현장이 의심되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형사의 평범한 상황이지만, <크래시>에서는 그 자체가 다르게 느껴진다. 차연호가 과거 교통사고 때문에 운전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멈춰서지만, 차연호는 그때 민소희의 그 말을 떠올린다. '사람 구할 기회도 놓친다'는 말은 그 트라우마 깊숙이 담겨 있는 과거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회한 같은 걸 끄집어내지 않았을까.

다시 정신없이 차를 몰고 달려가 결국 범인과 마주하게 되지만, 카이스트 출신에 이렇다할 호신술 하나 배워본 적 없는 차연호는 범인 앞에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그때 또다시 민소희가 가르쳤던 내용들이 떠오른다. "아니 어떻게 공격 한 번을 못해요? 그래 가지고 범인 잡을 수 있겠어요? 사람마다 공격하는 패턴이 있어요. 패턴을 잘 기억해야 돼요." 차연호는 범인이 패턴에 따라 휘두르는 칼을 피해 결국 그를 제압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장면이지만, 여기에는 차연호라는 인물의 성장서사가 들어간다. 과거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후, 전도 유망했던 카이스트 출신의 이 인물은 그 과거에 머물러 있게 됐다. 특채로 교통범죄수사팀에 합류한 건 그 부채감 때문이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교통사고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카이스트 출신 특유의 명석한 두뇌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찾아내는 이 인물은 그러나 경찰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함량 미달이다.

그걸 채워주는 건 다름 아닌 베테랑 경찰 민소희다. 옛 남자친구인 이태주(오의식)가 출세하기 위해 범죄도 눈감아주는 짓을 하고, 또 남의 성과 또한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는 걸 서슴지 않는 걸 보고 헤어졌듯이, 그는 그 어떤 외압이나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는 인물이다. 오로지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만 공감하고, 그래서 끝까지 범인을 잡으려는 열망이 남다르다. 이런 민소희인지라 차연호 같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역시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만을 가진 인물과 기막힌 케미가 만들어진다.

드라마는 설정 자체가 성 역할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교통범죄수사팀에서 맨주먹으로 빌런들을 때려눕히는 인물들은 민소희와 어현경(문희) 같은 여성들이고, 정반대로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정채만(허성태) 팀장이나 우동기(이호철) 경사 같은 남성들은 의외로 섬세한 면모를 보인다. 민소희와 차연호의 케미 역시 이렇게 뒤집혀진 성 역할 고정관념을 통해 그 매력을 더한다.

남다른 성장서사와 뒤집어 놓은 성 역할을 200%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차연호 역할의 이민기는 특유의 어눌해보이고 심지어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통해 간간히 터져나오는 액션으로 그 속에 쌓여 있는 감정들을 오히려 보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이고, 민소희 역할의 곽선영은 지금껏 선보이지 않았던 호쾌한 액션 연기로 시청자들을 시원시원하게 해준다. 여기에 허성태, 이호철, 문희가 보여주는 수사팀의 티키타카나 구경모 경찰서장 역할로 빵빵 터지는 아재 코미디를 선사하는 백현진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 연기가 폭발력을 만들고, 시청률 상승세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힘은 이 드라마가 대하는 교통범죄에 대한 남다른 태도다. 흔히 교통범죄라고 하면 중범죄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라 여겨지고 그래서 이 드라마 속 교통범죄수사팀 역시 마치 창고 같은 곳에서 지낼 정도로 하찮게 취급된다. 하지만 <크래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이들이 하는 일들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사건들을 통해 그려낸다.

<크래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교통범죄들은 중범죄와 겹쳐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벌어진 사고인 줄 알았는데 사건을 사고로 덮으려 하는 클리셰로까지 자주 등장하는 교통범죄는 한 사람 아니 나아가 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중범죄라고 이 드라마는 애써 강변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시청자들은 응원하게 된다. 차연호와 민소희를 중심으로 마이너리티 취급 받는 교통범죄수사팀의 진가를 모두가 알게 되기를 기대하며.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