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재건축 전망, ‘장밋빛’에서 ‘잿빛’으로?
2027년 착공·2030년 입주…“물리적으로 어려워”
(시사저널=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1기 신도시 선도지구의 재건축 전망이 '장밋빛'에서 '잿빛'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정부가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약속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저하와 조합원 분담금 증가, 촉박한 공사 기간 등으로 인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규모 인구를 수용할 이주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올 6월 공모를 시작해 11월에 선도지구 지정이 완료된다. 선도지구로 지정된 구역은 바로 내년부터 사업이 가능하다.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과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등을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한다.
선도지구란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를 향후 어떻게 재건축할지 보여주는 일종의 시범사업지구다. 각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에 돌입하는 단지로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국토부는 최근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선정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분당(8000가구), 일산(6000가구), 평촌·중동·산본(4000가구) 등의 2만6000가구를 선도지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역별로 1~2개 구역을 기준 물량의 50% 이내로 추가할 수 있어 최대 3만9000가구까지 선정할 수 있다.
정부 속도전 막는 현실의 벽
선도지구 계획은 속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선도지구에 대한 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정비구역 지정부터 관리처분계획 수립까지 최소 5년 이상 걸리는 착공 전 인허가 절차를 2년 내로 마친다는 계획이다. 선도지구 착공 일정을 2027년으로 못 박은 건 다음 대선 전까지 성과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의 계획대로 흘러갈진 미지수다. 변수가 많아서다. 당장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성 저하가 걸림돌로 꼽힌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정비사업 평균 공사비는 3.3㎡당 687만5000원을 기록했다. 3년 전(480만3000원)보다 43% 증가했다.
정부는 1기 신도시에 대한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재건축 용적률을 기존 180~200%에서 법정 상한의 1.5배까지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최대 용적률은 750%(준주거로 종상향할 때)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과밀화 우려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적용 용적률은 350% 전후가 될 전망이다.
시장에선 용적률을 높이더라도 공공기여(규제 완화 조건으로 기반시설 부지나 설치 비용 부담)와 비싸진 공사비를 고려한다면 사업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강남권 재건축사업도 시공사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며 "사업성이 더 떨어지는 1기 신도시 재건축에 건설사들이 선뜻 나설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사업성 저하로 분담금이 늘어나면 주민들이 재건축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다. 경기주택도시공사가 2022년 말 1기 신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적정 분담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2억원 이하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78.6%였다. 다만 최근 급증한 공사비를 고려하면 분담금은 2억원 이상 될 전망이다. 사업 규모에 차이가 있으나 서울 노원구 대표 재건축 단지인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조합원 분담금이 5억원대로 알려지면서 재건축 중단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기 신도시에 장기 거주자와 은퇴자가 많다는 점에서 분담금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공사 일정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2027년부터 1년간 이주·철거를 진행하고 2년 동안 아파트를 짓는다면 2030년 입주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최근 아파트 공사 기간을 48개월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통상 아파트 공사 기간은 36개월 수준이었지만 2022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이전보다 최대 1년 이상 길게 잡는 추세다.
"재건축 과정의 다양한 변수도 고려해야"
1기 신도시처럼 통합 재건축을 진행하면서 비교적 순조롭게 사업을 완료했다고 평가받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각종 인허가 절차를 거친 후 이주부터 입주까지 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 2018년 입주민 이주를 시작해 2019년 철거, 2020년 4월 착공을 거쳐 2023년 8월 준공 승인이 떨어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건설사들은 공사 기간을 산정할 때 기본 36개월(3년)에 4~5개월을 더 잡는 추세다"며 "주 52시간 근무제로 작업시간이 줄어든 데다 각종 환경 규제와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안전 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완공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이주·철거 기간 1년을 제외하면 2년 내 아파트를 지으라는 얘기인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와도 정반대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 대책 수립도 정부와 지자체의 과제로 거론된다. 이번에 선정되는 선도지구 물량은 2만6000가구다. 지자체 판단에 따라 최대 3만9000가구까지 늘어날 수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약 4만 가구가 2027년 착공 전까지 이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이주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정부가 밝혔던 임대주택 등 이주 단지를 건설하는 방안은 주민이 선호하지 않아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체계적인 이주 대책 없이 대규모 이주가 이뤄진다면 전·월세 대란이 일어날 수 있음은 물론 이주 일정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이 초대형 프로젝트이니만큼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기 신도시 전체 정비 물량의 10~15%를 선도지구로 선정하고 이후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비가 추진되는데 현실적으로 빠듯한 기한"이라며 "1기 신도시 정비는 단기 질주가 아닌 마라톤이므로 향후에도 꾸준한 진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선도지구로 지정하더라도 재건축 과정에서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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