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밀려 본회의 문턱 못 넘은 ‘지역 염원’ 법안, 22대 재도전
[편집자주] 21대 국회가 회기를 마쳤다. ‘정쟁으로 달궈진 최악의 국회’였다는 평가가 있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쟁점법안 등이 치열하게 논의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선 지자체들은 균형발전과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중점사업 관련 특별법 발의에 힘썼다. 상당수 법안들이 차기 국회로 넘어갔지만 지난 4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22대 국회에선 그동안 논의됐던 지역발전 법안들이 결실을 맺어야 한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지자체 쟁점법안을 통해 21대 국회를 되짚었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산업은행법)과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부산허브법)도 그중 하나다.
산업은행법은 산업은행의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도록 명시하는 개정안이다.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옮겨 부산을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며 지난해 5월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부는 필수 조직만 제외하고 본사의 모든 기능을 100% 이전하는 내용으로 공공기관 지정안 고시를 마무리했다.
21대 국회가 지난 5월 30일 폐원하면서 산업은행법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에서 계류돼 자동 폐기됐다. 지역의 여야 의원과 정부, 부산시는 법안 통과에 힘을 싣었지만 민주당은 산업은행 구성원의 반대를 이유로 법안 통과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지난해 11월 22일 국민의힘 부산지역 14명 의원은 민주당 주도로 처리가 보류됐다고 주장하며 “민주당 지도부가 사실상 반대입장으로 여론의 눈치를 보며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일방적 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권이 압승을 거두며 산업은행 이전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22대 민주당의 부산 의석수가 3석에서 1석으로 줄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긍정적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불분명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은 22대 국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재발의하겠다고 하지만 통과될지는 미지수”라고 예측했다.
부산시는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을 앞둔 지난 4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유치 신청도 하지 않고 부산허브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부산허브법은 부산을 남부권의 거점도시로 키우기 위해 획기적인 규제 혁신과 특례 부여 등을 적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전병민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18명의 여야 부산 지역 국회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했다.
부산허브법이 통과되면 부산 지역 특성에 맞는 특구를 지정해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입주기업에 규제 혁신과 세제 혜택 등 특례를 제공할 수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을 싱가포르나 홍콩 버금가는 글로벌허브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산허브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산허브법 역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하며 자동폐기됐다. 부산시는 22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북부특자도 관련 법안은 모두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무르며 폐지됐다. 김 지사는 22대 국회에서 경기북부특자도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5월 1일 김 지사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대국민 보고회’에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양주)과 김용태 국민의힘 당선자(포천가천)가 22대 국회에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법안을 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경기북부특자도 설치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민주당의 당론 결정이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경기북부특자도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월 23일 경기 북부지역을 방문해 “경기북부 재정에 대한 대책 없이 분도를 시행하면 ‘강원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지사가 경기북부특자도를 추진하자 총선을 5개월 앞둔 지난해 10월 여당 주도로 ‘메가시티 서울’이 논의됐다. 경기도 내 일부 지자체가 서울과의 생활권 공유를 근거로 서울시 편입을 추진했다. 당시 김포을에 지역구를 둔 홍철호 의원이 김포 서울 편입을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22대 총선 공약으로 ‘메가시티 서울’을 선정했다. 21대 국회에는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특별법안’ 3개가 접수됐다. 각 경기도 김포시, 구리시, 하남시를 서울에 편입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들 역시 소관 위원회 심사 단계에만 머무르며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메가시티 서울’을 공약했던 후보들이 모두 낙선하면서 정책이 사실상 좌초됐다는 평가도 있다.
구리시, 김포시는 총선과는 무관하게 ‘서울 편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병수 김포시장은 총선 직후 보도자료에서 “김포시는 2022년부터 한 번도 서울 통합의 발검음을 멈춘 적 없다. 총선 이후 오히려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포시는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서울 편입 특별법을 재발의하고, 행정안전부에 주민투표 실시를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구리시는 지난 5월 9일 정례브리핑에서 특별법 재발의 의지를 밝히면서 대시민 토론회, 주민 여론조사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대패한 만큼 ‘서울 편입’ 관련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선 정부 움직임을 통한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세종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세종시 인구와 이로 인한 사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3월 세종지방법원 신설 내용을 담은 세종지방법원설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세종지방법원설치법 개정안은 지난 5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를 통과했다. 지난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본회의까지 처리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채상병특검법’ 등 쟁정법안의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며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대구경북(TK)신공항특별법은 기부 대(對) 양여 방식으로 진행되는 K-2 군공항 이전사업 과정에서 부족한 사업비에 대한 국비지원 내용을 담았다. 또 △신공항 건설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국토교통부 소속 신공항건설추진단 설치 △각종 인허가 의제 △종전 부지에 대한 특별구역 지정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기부 대 양여는 대구시가 신공항을 건설해 국방부에 기부하고, 종전 군 공항 부지를 양여받아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법안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0년 9월 21대 국회의원으로서 최초 발의한 법안을 모태로 한다. 대구시는 해당 법안을 수정·보완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 갑)이 2022년 8월 대표발의했다. 대구시는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국회의원을 비롯해 기재부·국토부·국방부 등 관계 부처를 만나 협의를 진행했다.
TK신공항특별법은 지난해 4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TK신공항특별법 통과는 대구경북 500만 시도민께서 성원해주신 덕분”이라며 “2030년까지 중남부권 첨단물류여객공항을 완공해 대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 등 지역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2월 부산 지역구의 최인호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쟁점 조항에 대한 이견을 보였다. 이를 두고 홍 시장과 갈등이 거듭되기도 했다. 최 의원은 “TK신공항특벌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공항법 체계나 재정 지원사항에 대해 특혜조항을 수정 또는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쟁점이 된 11가지 조항들은 대구시 등에서 자구 수정을 거쳐 정부 부처와 합의점을 찾았다.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인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위원을 만나 특별법과 관련 협의를 이끌어냈다. 소위를 통과한 TK신공항특별법은 국토교통위 전체회의를 통과, 동시 통과를 추진하던 광주군공항이전특별법과 함께 지난해 4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홍 시장은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TK신공항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와 광주시가 합심해 제정을 이뤄낸 달빛철도특별법도 있다. 이 법안은 영·호남 지역 화합과 상생을 위해 광주 송정역을 출발해 전남, 전북, 경남, 경북을 거쳐 서대구역까지 이어지는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속한 건설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국토교통부 산하에 달빛고속철도건설추진단을 신설하는 것이 핵심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달빛철도특별법은 헌정 사상 최다인 국회의원 261명이 발의에 참여했다. 광주와 대구가 2038년 공동유치를 목표로 하면서 여야 의원들이 합심하는 계기가 됐다.
당초 정부는 수조원이 투입돼야 하는 철도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에 난색을 표하며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철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이에 여야는 의견 차이를 보였고 법사위 상정도 미뤄졌지만 지난 1월 24일 진통 끝에 여야가 합심한 결과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다.
광주시와 대구시는 달빛철도를 통해 국토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동서화합과 지방살리기, 국가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달빛철도는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도 “달빛철도특별법은 영호남의 30년 숙원이었다”며 “앞으로 영호남을 중심으로 TK신공항과 함께 수도권에 버금가는 거대 남부권 경제권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부내륙연계발전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중부내륙특별법)도 지난해 11월 23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충북도가 법 제정을 주도한 이 법안은 중부내륙지역의 자립적 발전기반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안 중심의 개발계획과 상수원보호지역을 이유로 과도한 규제와 지속적인 희생을 강요받은 중부내륙 지역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한다. 최영환 충북도지사는 본회의 통과 직후 충북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부내륙특별법 제정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지역의 차별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며 “새롭게 제정된 특별법을 기반으로 중부내륙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신재은 기자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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