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 땐 즉각 조치” 국무회의서 ‘9·19 합의 효력 전면 정지’ 의결
정부가 4일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남북한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전면 정지시키는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오물 풍선 1000여개를 우리 측으로 날려보내고, 서북 도서 지역 항공기·선박을 대상으로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을 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다.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열어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고 정부가 북한에 통보하는 대로 9·19 군사합의는 효력이 완전히 정지된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북한이 5월 28일 오물 풍선을 살포한 데 이어 29일부터 우리 쪽으로 GPS 전파 교란 공격을 자행했고, 우리 정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30일에는 탄도 미사일 18발을 발사했으며 6월 2일에는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이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오물 풍선 살포 또한 정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라고 했다. GPS 교란에 대해서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교신 혼란 행위 금지’ 헌장을 무시해 민간 선박의 안전을 위협하는 몰상식하고 저열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북한의 사실상 파기 선언에 의해 유명무실화된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남북한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부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안을 추진코자 한다”며 “이런 조치는 우리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것이며,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 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우방국과 긴밀히 공조해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는 한편,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모든 도발을 즉각 중단하고, 남북 공동 번영의 길로 나오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육상 및 해상에 완충 구역을 설정하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철수하며, 전방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것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군사분계선 5㎞ 내에서 포병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 훈련을 하지 않으며, 우리 측의 서해 덕적도 이북 수역과 동해 속초시 이북 수역에서 포 사격과 해상 기동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우리 측은 9·19 군사합의를 준수해 관련 지역에서 여단급 이상 기동 훈련 등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9·19 군사합의를 사실상 무시해 왔다. 위반 사례가 3600회에 달한다.
정부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21일 밤 이른바 ‘군사정찰위성’을 기습 발사하자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11월 22일 9·19 군사합의에서 우리 군의 대북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제1조 제3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자 북한은 이를 구실 삼아 다음 날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그 뒤로 우리 측만 9·19 군사합의의 나머지 조항들을 준수하는 상태가 지속돼 왔다.
정부는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가 국무회의 심의·의결과 북한에 대한 통보만으로 가능하다고 봤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남북 간 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해당 합의서가 국회 동의를 얻어 체결됐거나 국회 비준을 거친 경우에는 효력 정지 역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9·19 군사합의를 체결한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서는 별도의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없고 원칙과 방향을 담은 선언적 합의”라며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해졌다. 정부의 지난해 일부 조항 효력 정지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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