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보호지역'···백두대간마저 벌목 피해

유주희 기자 2024. 6. 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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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보호지역 전경, 왼쪽이 벌채된 공간, 오른쪽이 보호된 공간. /그린피스
[서울경제]

대한민국 전체 산림 보호지역 중 7만 4,947헥타르가 ‘경제림 육성단지’와 겹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1.2배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산림을 보호한다는 보호지역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박종원 부경대 법학과 교수와 함께 발간한 보고서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을 통해 이 같이 분석했다. 경제림 육성단지와 중첩된 7만 4,947헥타르의 보호지역 중에는 우리나라 생태 축으로 불리는 백두대간 보호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지역은 세계 보호지역 데이터베이스(WDPA)에 기록된 국내 보호지역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보호지역 : 인간의 개발행위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 국내의 대표 보호지역으로 설악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이 있다.

▶경제림 육성단지 : ‘계획적으로 육성하여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산림’. 산림청이 목재 생산을 위해 나무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고 이용하는 산림이다.

그린피스가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하나인 민주지산을 2024년 4월 직접 방문한 결과, 완충지역부터 핵심지역까지 총 11구역에 걸쳐 숲이 모두 베어져 있었다. 베어진 곳 위에는 ‘민주지산 선도 산림경영단지 숲가꾸기 시범사업 입지’ 라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호지역 중에서도 백두대간 보호지역은 대한민국의 위와 아래를 잇는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의 모두베기는 광범위한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모두베기는 키우려는 임목이 더 잘 자라도록 솎아내는 간벌(솎아베기)과 달리 특정 구역 전체를 모두 베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그린피스는 보호지역 내 경제림 개발이 이뤄진 데 대해 관련 법의 부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현행법상 ‘경제림’과 ‘보호지역’의 법적 개념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보호지역은 10개 개별 관계 법령에서 지정한 목적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지정 목적 또는 세부 구분에 따라 입목의 벌채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벌채가 금지되지 않거나 금지되더라도 광범위한 예외 규정에 따라 허용되는 구조다.

민주지산 보호지역 내 벌채 구역. 백두대간 보호지역의 완충지역부터 핵심지역까지 생겨난 임지는 총 11곳으로 확인됐다. /그린피스

박종원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백두대간보호법은 보호지역 내 금지 행위만 열거하는 블랙리스트 방식인데, 입목 벌채를 금지 행위로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며 "보호지역 내에서 입목 벌채를 허용하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한 훼손으로부터 백두대간의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고, 보호지역의 효과적인 보전·관리를 요구하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목표 3(30x30)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보호지역의 개발 행위는 야생동식물의 서식처와 탄소흡수원의 파괴로 이어지 산림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만큼, 산림청은 보호지역 내 경제림 육성단지를 해제하고 환경부는 국제 기준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호지역을 실효성 있게 관리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에 서명하고 이에 따라 2023년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서 2030년까지 전 국토의 30%를 보호지역 및 자연공존지역(OECM)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보호지역인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다도해해상국립공원 중 흑산도 공항 추진 등 이름만 보호지역인 ‘페이퍼 보호지역’ 이 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이번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고서는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 사람들 소속 최중기 소장(인하대학교 해양학과 명예교수), 한상훈 연구실장(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윤여창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산림과학) 등이 감수했다. 그린피스는 민주지산의 경제림 개발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상을 보여줄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하고 보호지역 내 개발행위를 방지할 법안 발의를 추진하는 등 앞으로도 보호지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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