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 이재명을 권력쟁취 ‘수단’으로… 맹목적 지지 아닌 전략적 지지[허민의 정치카페]

허민 기자 2024. 6. 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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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의 정치카페 - ‘개혁의 딸’ 기원
정치 팬덤, 권력의 영고성쇠 따라 생성·소멸… 개딸은 ‘손가혁 + 동부연합 + 대깨문’ 연합군
노무현 - 문재인 - 이재명 등 보스 운명 따라 지지 행태 달라져… 주군을 부리며 곳곳 정치 개입

시대가 바뀌면 팬덤도 변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심과 명심까지 사실상 지배하는 팬덤 ‘개딸’의 행태가 이를 말해준다. 개딸에 이재명 대표는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이다.

◇기원과 연혁

민주당 정치 지도자들에게 팬클럽이 생긴 건 2000년 이후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가 시작이었다. 이후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뜻하는 대깨문, 그리고 이재명을 지지하는 ‘개혁의 딸’ 개딸이 차례로 생겨났다.

노사모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서 출마했다 떨어진 ‘바보 노무현’을 응원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의 승리에 기여했고, 2004년 노무현 탄핵 사태 땐 ‘반탄 역풍’의 중심이 돼 그해 여당의 17대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었던 노사모만 해도 합리성을 유지했다는 평가가 많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만료 후엔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다 2019년 해산했다.

노사모의 뒤를 이어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팬클럽이 출현했다. ‘노무현의 비극’ 이후 결집한 이들은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면서 주군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대깨문으로 진화했다. 주군을 우상화하면서 반대 진영은 거칠게 공격했다. 진중권 교수는 대깨문의 행태를 “김어준 방송을 듣고 종교집단 수준으로 세뇌돼 권력의 홍위병으로 동원됐다”고(신동아, 2021년 5월호)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이 저물고 2022년 20대 대선에 도전했다 낙선한 이재명을 지지하는 개딸이 부상했다. 이들은 2030 여성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재명 지키기를 부르짖으며 열광적 팬덤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무기는 좌표 찍기, 문자 폭탄, 수박 색출, 18원 계좌입금 등이다. 현재는 나이와 성별 구분 없이 강성 친명 지지자를 개딸이라 부른다.

2010년대 두 차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재명과 운명을 함께했던 ‘손가락 혁명군’ 손가혁도 팬덤 계보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노사모와 대깨문은 주군의 부상 및 퇴조와 함께 명멸하다 손가혁 본진과 만나 개딸의 원형을 이뤘다.

◇행태의 변화

정치 팬덤은 권력의 영고성쇠에 따라 생성·소멸했다. 특히 주군에 대한 지지 성향과 행태가 시대별로 달라졌다. 노사모는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대깨문은 문재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개딸은 이재명에 대한 ‘전략적 지지’를 보냈다.

오랫동안 민주 시민들에겐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더라도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비판적 지지’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덕목이 있었다. 노사모가 그랬다. 적어도 주군에 대해 맹목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노무현이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지지자 모임에서 물었다.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뭘 하실 겁니까.” 노사모가 답했다. “권력을 감시할 겁니다.” 노사모는 주군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견지하면서, 이라크 파병 결정·대연정 제안·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비극이 모든 걸 바꿔놨다. 2009년 5월 노무현의 죽음이 불러온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고백은 향후 진보 권력 팬덤의 존재론적 질문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최성호 경희대 교수는 “노의 죽음 이후 진보 팬덤은 비판적 지지론과 결별했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무장한 문빠로 재탄생했다”라고 분석했다(최성호, ‘문빠에 대한 철학적 변론’).

이렇게 대깨문이 된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또 한 번의 변화와 마주한다. 진보 정권 재집권 실패에 실망한 팬덤은 주군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전략적 지지가 대안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다선 의원 출신 A 씨는 “진보 팬덤이 과거엔 주군에게 무조건 충성했지만 이젠 주군을 부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친명 진영의 B 의원은 “개딸은 이재명이 자신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지지나 맹목적 지지를 넘어 전략적 지지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개딸이 ‘이재명의 말을 듣지 않는 이재명 지지자’가 된 셈이다.

◇개딸과 이재명

개딸의 세계는 군중을 지배하는 교주, 그를 에워싼 무당들, 이성을 헌납한 맹신도의 역할분담이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현장이다. 이들의 성향은 ‘사교(邪敎)적 권력’과 ‘파벌적 오만’으로 요약된다. 한국 정치에 존재했던 과거 그 어느 팬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며 광적이다.

마이클 린치 교수의 말대로 이들은 권력을 위해 진실도 묵살할 태세가 돼 있는 ‘지적·도덕적 오만함’, 그리고 해나 아렌트가 파시즘을 비판하며 우려했던 ‘권력의 무오류성’에 대한 집착을 특징으로 갖는다. 성향상으론 강남좌파, 이념적으로는 좌익 대중주의다.

배후세력은 정확하지 않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전략통인 비명 C 씨는 “친문에서 친명으로 갈아탄 대깨문, 구 손가혁의 주류 급진주의자들, 그리고 성남을 근거지로 한 경기동부연합 의회파가 연합군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개딸이 민주당 입당 러시를 이룬 것은 2022년 3월 이재명의 대선 패배 후, 그리고 2023년 9월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 전후다. 온라인 플랫폼의 열성 활동가들,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의 지도급 회원, 민주당 열혈 권리당원 등이 개딸이라는 ‘교집합’을 이룬다.

개딸은 존재 자체가 권력이다. 개심이 명심을 지배하고 명심이 당심을 결정한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즉각 ‘반동분자 색출하자’ 구호와 함께 살생부를 만들어 문자 폭탄을 가했다. 이는 그대로 22대 총선을 앞둔 ‘친명횡재-비명횡사’ 공천으로 연결됐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법 방탄과 대선 도전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 역시 개딸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원외 강성 친명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수십 명의 현역 의원 등 당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원 중심 정당혁신 실현방안’ 토론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총선-전대-대선

개딸은 민주당의 총선 공천에 간여했고 원내대표 선거 판도를 결정했다. 앞으로 이재명의 대표 연임 과정에도 개입할 것이다. 주군에 대한 무조건 충성에서 전략적 지지로 태도를 바꾸고, 때로 주군을 권력쟁취의 수단화하려는 팬덤의 존재는 이재명에게 약일까 독일까.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손가혁’은 손가락 혁명군의 준말. 이재명 성남시장 때부터 경기지사 때까지 활동했던 팬클럽. SNS와 인터넷에 기반한 정치 선전·선동과 라이벌 공격에 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1세대 정치 팬덤.

‘마이클 린치’는 미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이며 인식론의 권위자. 저서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에서 정치를 대하는 인간의 ‘노잇올(know-it-all)’이라는 파벌적·지적 오만함을 탐사.

■ 세줄요약

기원과 연혁 : 민주당 정치 지도자들에게 팬클럽이 생긴 건 2000년 이후. 노사모, 대깨문, 개딸 등이 차례로 생겨나. 노사모와 대깨문은 주군의 부상 및 퇴조와 함께 명멸하다 손가혁 본진과 만나 개딸의 원형을 이뤄.

행태의 변화 : 정치 팬덤은 권력의 영고성쇠에 따라, 주군의 운명에 따라 지지 이론과 행태 등을 달리해 옴. 노사모는 ‘비판적 지지’였지만 ‘노무현의 비극’ 이후 대깨문은 ‘맹목적 지지’로 선회. 개딸은 ‘전략적 지지’ 입장.

개딸과 이재명 : 개딸은 손가혁+경기동부연합+대깨문 연합체. ‘사교적 권력’과 ‘파벌적 오만’ 성향이 강함. 개심이 명심을 지배하고 명심이 당심을 결정. 개딸은 이재명을 자신의 권력쟁취 수단으로 부리려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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