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동고동락 ‘하늘의 도깨비’ 비행 끝났지만 ‘Legends Never Die’[M 인터뷰]
팬텀 한 기종만 1800시간 조종
평양 정밀타격 가능할 정도로
기동성능 여전한데 퇴역 아쉬워
3시간 동안 고별 국토순례비행
동기들 “잘 보내줘라” 격려 전화
완전탈진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살아있음을 보여줘 감회 남달라
인터뷰 =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불멸의 도깨비’ F-4E ‘팬텀(Phantom)’ 전투기가 47년에 걸친 영공 수호의 임무를 마치고 공식 은퇴한다. 이미 퇴역한 F-4D를 공군이 처음 도입했을 때부터 성능개량형인 F-4E가 퇴역할 때까지 무려 55년간 영공을 수호한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오는 7일 열리는 퇴역식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주관한다. 국방장관이 전투기 퇴역식을 주관하는 것은 우리나라 공군 역사상 처음이다. 전 세계 100여 명의 취재진과 팬텀 매니아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공군은 F-4E에 ‘명예전역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1969년 8월 29일 대구에는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F-4D가 배치됐다. F-4D는 남북한 공군력 역전 드라마와 세계 5위 공군력 건설 신화를 만든 주역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이란에 이어 네 번째로 팬텀을 보유하게 된 국가가 됐다. 베트남전이 끝나자 미군은 무상임대한 F-4D 18대 반납을 요구했고, 박정희 정부는 국민성금 163억 원을 모아 1975년 이 중 5대를 구매했다. 이른바 ‘방위성금헌납기’로, 공군은 국민의 정성을 모아 구입한 전투기로 구성된 편대를 ‘필승 편대’로 명명했다.
이 팬텀을 조종하는 ‘마지막 대대장’을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에 있는 제10전투비행단에서 만났다. 김태형(43·공사 52기) 중령이 대대장을 맡고 있는 153전투비행대대는 1979년 대구기지에서 창설돼 이듬해 1980년 청주기지로 옮겼고 2017년 지금의 수원기지로 이전했다. 김 대대장은 “2017년 153비행대대가 운영하는 F-4E는 20대였는데, 점차 퇴역해 대대장에 취임한 2022년 12대로 줄었다”면서 “다음 주 마지막 남은 3대로 고별비행 및 퇴역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20년 차 팬텀 조종사로서 팬텀과의 인연은.
“2005년 11월에 팬텀 대대에 처음 전입했다. 팬텀이 2인 전투기(복좌기)라는 점이 선택 이유였다. 그 후로 팬텀 전투기만 계속 탑승하고 있다. 팬텀 비행은 약 1800시간, 2019∼2021년 3년간 비행단을 떠나 대외 근무를 한 것을 제외하곤 나머지 기간에 계속 팬텀 전투기만 탑승했다.”
―마지막 팬텀 대대장으로 퇴역식을 치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다음 주가 퇴역식인데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굉음의 엔진 소리와 공중에서의 전투 기동성능 등은 여전한데 퇴역을 해야 한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다음 주 팬텀이 최종 비행하고 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오랜 연인 같은 ‘애기(愛機)’ 팬텀과 이별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팬텀 전투기로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조종사, 정비사들과 이별해야 해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다.”
―조종사 지원 동기는.
“고향인 전북 정읍 이웃 형님이 F-5 조종사였는데 너무 멋있어 보여 공사를 지원하게 됐다. 요즘 팬텀이 언론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 팬텀을 탔던 동기들로부터 ‘팬텀 잘 보내 줘라’며 격려 전화가 많이 온다. 팬텀 대대장은 올해 9월 1일까지이며, 이날부로 153비행대대는 해체된다.”
―남북한 공군 전력을 역전시킨 전투기, 팬텀의 우수성과 장단점은.
“1969년 말에서 1990년대까지 팬텀은 현재의 세계 최강 5세대 스텔스전투기인 미국의 F-22 랩터에 비견될 정도로 탁월한 전투기로 평가받았다. 한국 도입 당시의 팬텀은 말 그대로 전천후폭격기였다. 공대공 능력과 공대지 능력이 모두 뛰어나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흔히 ‘뽀빠이(Popeye)’ 미사일로 불리는 AGM-142가 2002년 공군에 처음 도입됐는데 이를 발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기가 F-4E였다. AGM-84H SLAM-ER 공대지미사일이 2007년 실전 배치되기 전까진 원거리에서 북한 평양의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무기였다. AIM-7도 가시거리 밖,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쏠 수 있는 우리 공군 최초의 공대공미사일이었다. 원거리 유도무기와 훌륭한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으며, 총 1만5000파운드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크고 육중한 외형으로 인해 가속 성능과 기동력이 다소 제한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팬텀은 우리 인수 요원들이 미국 현지 사막에서 한·미로는 첫 해외 연합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하거나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서 정확하지 않지만, 2000년대 이전의 연합훈련은 현지에서 생산된 항공기로 미국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한 후 한국에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한국 공군의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 첫 참가는 1979년 F-4D였다.”
―팬텀은 우리 공군 전력 강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팬텀을 한국에 도입한 1968∼1969년 당시 안보 상황을 보면 적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했고,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피랍되는 등 안보 상황이 극도로 악화했다. 제2의 6·25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세계 최강 전투기로 평가되던 팬텀을 도입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었고 영공방위의 핵심전력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팬텀 전투기는 공군 전력에 유형적인 면뿐 아니라 무형적인 정신적 면에서도 큰 기여를 했다. 팬텀의 우수한 공대공, 공대지 능력 덕분에 북한보다 전투기 숫자는 부족하지만, 질적 우수성으로 공군력 열세를 극복했다. 세계 최강 전투기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크게 상승시켜 자주국방의 토대가 됐다.”
―팬텀 조종사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최근 퇴역식을 준비하면서부터다. 지난 18년간 팬텀 전투기를 타 본 입장에서도 장기 운영 항공기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최근 퇴역식을 준비하면서 팬텀 전투기의 우수성을 다시 확인하게 됐고, 주변에서도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계속 주고 계셔서 마지막 팬텀 전투기 조종사라는 자부심이 최고조에 올라와 있다.”
―팬텀을 조종하면서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야간비행 때 비행착각에 들어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비행 중 조종사가 비행 시 작용하는 여러 가속도로 인한 인체평형기관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경험하는 착각 현상으로, 흔히 ‘버티고(vertigo·공간정위상실)’라고도 한다. 밤에 비행하면 빛이 많이 부족하고 구름이 있으면 항공기 자세 파악이 잘되지 않는다. 그럴 때 가끔 비행착각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등줄기 서늘한 땀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면서 아찔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달 9일 49년 만에 재현한 필승 편대 고별 국토순례비행을 준비하면서 감회는 어땠나. 탑승 기자들도 멀미 등으로 고생했다고 들었다.
“수고한 조종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필승 편대 임무가 국토순례만 해서 겉으로는 난도가 낮은 임무로 비칠 수도 있지만, 우리 편대원에게는 매우 긴장되고 어려운 비행이었다. 비공중 근무자를 태우고 비행하는 것 자체가 스위치 오작동 등에 무척 신경 쓸 일이 많은 데다가, 약 3시간 동안 밀집 편대를 유지해야 하는 임무였기에 최고의 교관 조종사들로 구성했다. 수많은 조종간 조작으로 팔이 아플 정도였고 임무 후에 완전 탈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웠다. 하지만 탑승한 국방부 기자들이 고생한 조종사들과 훈훈한 뒷얘기를 하는 걸 보고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팬텀 전투기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줬고 팬텀을 운영하기 위해 조종사, 정비사, 무장사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준 뜻깊은 행사였다.”
―미 맥도널 더글러스가 생산한 전 세계 팬텀 중 마지막 기체가 한국에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153비행대대 항공기가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생산한 마지막 전투기들이고, 현존하는 전 세계 마지막 F-4E 기체 역시 현재 우리 대대에서 운영 중이다. 맥도널 더글러스가 생산한 5057번째, 전 세계 팬텀의 마지막 항공기 744호는 아쉽게도 소실됐지만 바로 앞 5056번째 743호 팬텀이 전 세계 마지막 팬텀으로 남아 있다.”
―끝으로 떠나보내는 팬텀에 대한 인사, 국민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팬텀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퇴역을 맞이할 수 있어서 팬텀 조종사 대표로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레전드 네버 다이(Legends Never Die)’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팬텀 전투기의 전설적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 대대장으로 팬텀 조종간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 153비행대대 ‘팬텀맨’들 소감
무겁고 조종하기 어렵지만… 北 도발 막아준 핵심 전력 함께한 軍생활 영광스럽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소속 마지막 F-4E 팬텀 대대인 153전투비행대대 소속 팬텀맨들은 팬텀 고별식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다양한 평가를 내놓았다.
조영화 소령은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북한보다 공군력이 약하고 전투기 숫자도 적었으나, 팬텀이 들어옴으로써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공군력을 갖게 됐다. 그만큼 우리 공군의 역사에 팬텀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팬텀은 크고 무거운 기체를 가지고 있고 과거에 설계된 기종이다 보니 컴퓨터로 제어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이 장착되지 않아 속도영역에 따라 조종 특성이 크게 달라진다”며 “자동차로 비유하면 내가 핸들을 꺾은 것을 전자적으로 제어를 해주는 게 아니고 운전자가 모두 컨트롤해야 한다. 조종사가 계기를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팬텀은 다른 전투기보다 조종하기가 좀 더 어려운 편이다.
강태호 준위는 “팬텀의 마지막 정비감독관이라는 타이틀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며 “팬텀과 함께 34년 군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팬텀 퇴역 후 곧 전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전투기보다 크고, 키도 높아 애로사항이 많았다. 특징으로는 공군용 전투기이지만 노즈기어(앞바퀴) 타이어가 2개고, 날개도 접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55년 동안 팬텀을 운용하면서 정비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고 정비 방법 및 지원 장비 창안 활동을 하면서 항공기 수명을 늘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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