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게 없는 용산판 ‘부부의 세계’

한겨레21 2024. 6. 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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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통령은 술 한 잔, 여사는 사진 한 장이면 흡족해하는 분들이야. 법 없이 사실 분들." 채 상병 특검법이 끝내 통과되지 않아 침울해하는 이들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수사하다 충성심에 반했다는 설, 비선 라인이 작동했으리라는 설, 밥 한 끼 사주듯 자리 하나 주는 게 원래 윤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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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정치의 품격]‘문고리 3인방’ 정호성 기용·연금개혁 뭉개기… 지독히 무능한 ‘어쩌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4년 5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국빈 방한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대통령과 함께 블랙이글스의 축하 비행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차피 대통령은 술 한 잔, 여사는 사진 한 장이면 흡족해하는 분들이야. 법 없이 사실 분들.” 채 상병 특검법이 끝내 통과되지 않아 침울해하는 이들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의인 10명이 채 없는 여당도, 지옥문이 열린 것도 모르는 대통령실도,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조만간 후과를 치를 것이니 ‘그런 분들’을 상대로 너무 힘 빼지 말자고 주변을 위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은 한결같다. 한결같이 얄팍하다. 너희들이 영 그렇다면… 옜다 사과. 강아지 앞에 사과를 내밀던 후보 시절의 안목과 태도 그대로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깊고 넓고 진지한데 이에 대한 반응과 대응은 얕고 좁고 가볍기 그지없으니,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총선 참패에도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우리 대통령은 진짜 무서운 게 하나도 없나 보다. 김건희 여사 말고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 관련 사건 수사를 하던 검사 책임자들을 쏙쏙 뽑아 교체하자마자, 여사는 곧바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라질 때 아무 말 없었듯 돌아올 때도 아무 말 없다. 해명이나 설명은커녕 겸연쩍은 표정조차 없다. 대통령이 출입기자들 불러 모아 가든 김치찌개 파티를 할 때 나오지 않은 정도가 그나마 최선의 몸 낮춤이었나. 이날 ‘센터’는 계란말이였으니까. 여사 등장에서도, 현안은 소거된 딴 세상 같은 기자 만찬에서도, 국민의 시선과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특유의 뻗댐, 얄팍한 눈속임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그 모두 즉흥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 정권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정호성씨를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기용한 것은 ‘즉흥 인사’의 최신판이다. 수사하다 충성심에 반했다는 설, 비선 라인이 작동했으리라는 설, 밥 한 끼 사주듯 자리 하나 주는 게 원래 윤 대통령 스타일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설사 누구보다 성실하다 해도 비선의 농단을 심부름하다 대통령 탄핵까지 이르는 데 일조했던 이다. 그런 이에게 또 공직을 맡기는 것은 ‘내가 이 나라의 통이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시위일까. 아니면 국민감정을 조롱하는 ‘국민농단’일까. 여당에서조차 “기괴하다”는 평이 나왔다.

여사와 인사만 문제일까. 정책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기괴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격적인 양보 제안으로 여당이 주장해온 소득대체율(받는 돈)로 국민연금 개혁 방안이 현실화하려는 문턱에서 급제동을 걸었다. 보험료율(내는 돈) 인상폭에는 여야 의견 접근이 이뤄져 있으니 일단 더 내는 쪽으로 반 발짝이라도 나아가자는 의견이 여당 중진 사이에서도 나왔으나, 몇몇 ‘스피커’를 내세워 구조개혁도 해야 한다고 생트집 잡으며 끝내 제21대 국회에서의 처리를 무산시켰다. 정부가 하고 싶은 개혁 방안이 있기는 한가. 2023년 정부는 무려 24가지의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를 내놓으며 국회에 책임을 미뤘다. 공론조사도 마친 제21대 국회에서 책임을 다하려 하자 화들짝 놀라 막아선 것이다. 하고 싶은 척만 하는 게 정책 목표인가. 진짜로는 하고 싶지 않은 티가 역력하다.

일관된 맥락이 읽히기는 한다. 지독한 무능이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실은 빈속인데 욱하는 성정이 얼떨결에 공정과 상식으로 포장돼 때마침 국민의 욕구와(그리고 아내의 욕구와) 맞아떨어져버린 기구한 사내의 안간힘이 빚어낸 촌극 아닐까. ‘내로남불’을 비판하며 그 자리에 올랐으나 누구보다 맹렬히 내로남불 중인 ‘어쩌다 대통령’의 자기부정을, 우리는 용산발 ‘부부의 세계’ 정치 실사판으로 보고 있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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