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 9정맥 완주한 父子] 아들이 산에 가자고 먼저 졸라…4년 만에 최연소 완주
고등학교 1학년 정겨운군이 아버지 정범진씨와 함께 우리나라 산줄기 1대간 9정맥 약 3,000km를 완주했다. 지난 4월 27일 낙남정맥 마지막 구간을 끝으로 3년 10개월, 180회에 걸친 장도를 마쳤다. 완주 당시 나이는 15세 10개월로 현재까지 산악계에 알려진 바로는 최연소 완주자로 추정된다.
1대간 9정맥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줄기 인식체계인 산자분수령(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에 의해 정립된 개념이다. 9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수백km의 산줄기들로 낙동정맥,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금남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북정맥, 금북정맥, 한남정맥, 낙남정맥이다.
흥미롭게도 이 부자의 산행은 아들이 먼저 제안해 시작됐다. 정범진씨는 그 전까지 등산을 전혀 즐기지 않았었다. 큰아들 정이든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제 중학교 올라가는데 주변에서 공부할 때 체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운동할 겸 아빠에게 등산을 가자고 졸랐다"며 "산에 가면 조용하고 운동도 되고 좋아서 일요일마다 계속 가게 됐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서 꾸준히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둘째인 정겨운군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는 "아빠와 형이 등산을 하자 혼자 남기 싫어 나도 따라가겠다고 했다"며 "초반에는 아무래도 다리도 짧고 해서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그래도 같이 가면 재밌어서 산이 싫어지진 않았다. 또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취미와 경험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정범진씨는 "사실 한 2~3번 가면 그만 가자고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삼부자가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인터넷 검색해서 '어, 이 산 멋있네?'하면 그냥 갔어요. 그렇게 2년을 그런 산들 위주로 다녔죠. 저희 집이 전주라 가까운 지리산은 27번이나 갔어요. 안 가본 코스가 없죠."
그렇게 2년을 매주 꼬박 산행하자 이제 산을 고르는 게 일이었다. 그때 지리산에서 만난 등산객들로부터 본인들이 백두대간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렇게 대간을 알게 됐다. 두 형제는 "우리도 백두대간하면 매번 어디 갈지 고민할 필요 없겠다"고 외쳤다.
그렇게 시작한 대간 종주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일단 어떻게 운행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10km를 걷고, 다시 10km를 되짚어 돌아오는 '왕복'방식을 택했다. 일반적인 대간 종주는 어느 정도 걸은 뒤 하산해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와 자차를 회수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래보다 좋은 체력…진로 고민도 산에서 해결
이들은 산행지도 앱의 존재도 몰랐다. 그래서 조난도 당했다. 대야산 구간을 진행하는데 길을 잃었다. 원래라면 오후 5시에 하산할 것으로 예상돼 택시기사를 넉넉하게 6시까지 와달라고 부른 상태였다. 그런데 간신히 길을 찾아 하산하니 밤 12시였다. 정씨는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돈은 줄 테니 기다리지 말고 가시라고 말했는데도 너무나 감사하게 택시기사가 '내 손님이 산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며 기다려줬다"고 전했다.
"이 분 말고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돌아가는 택시를 잡지 못하자 공짜로 들머리로 태워주신 분도 계시고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했죠. 저렇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하는 도리가 배려고, 너희도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요."
정씨는 "원래 산악회에 가입하지 않고 가족끼리만 산행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다니면서 본 산악회들의 행태가 남에게 피해만 주는 것들이라 굉장히 싫었다. 그런데 홀대모 산악회의 '부뜰이'란 닉네임의 회원을 우연찮게 산에서 만났다. 그렇게 홀대모에서 산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백두대간을 끝내고, 다음 과제로 또 정맥을 하나씩 완주해 나갈 수 있었다. 1년 중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는 주말을 제외하면 날씨와 관계없이 무조건 산에 갔다.
정씨는 "46, 48세 때 두 아들을 얻은 터라 주말에 시간이 많아 이렇게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며 "젊은 부부라면 이렇게 시간과 정신을 쏟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비결을 밝혔다.
정이든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산행에서 멀어졌지만, 정겨운군은 계속 아버지와 산행을 같이 했다. 그는 "대야산 직벽처럼 스릴 있는 암릉 산행이 재밌다"며 "힘든 산행일수록 오히려 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또래들에 비해 체력적으로 앞서 있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산에서 꿈도 정했다. 원래 스마트팜 관련 학과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진짜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할 예정이다. 산에서 오랫동안 걸으며 홀로 고민한 결과다. 최종 꿈은 오토바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아빠가 늘 산을 타는 게 인생하고 똑같은 거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걷고 나니까 지금은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산으로부터 배운다는 게 잘은 몰라도 이런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1대간 9정맥 완주 소감을 묻자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하나씩 끝날 때마다 계속 다른 정맥이 남아 있어서 끝난 기분이 아니었는데 다 걷고 나서도 같은 기분이다"라고 했다. 앞으로 올라야 할 산이 더 남았고, 계속 산을 오르고 싶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든 것일까? 정겨운군과 정범진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다음날 영산기맥을 시작했다. 이제 6기맥, 그리고 162지맥이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