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샤넬·에르메스가 '한국 문화유산 후원'에 열심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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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의 전통과 역사가 깃든 문화유산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전형연 국립목포대 인문콘텐츠학부 교수는 "'전통'과 '장인 정신'을 명품과 보통 상품을 나누는 기준으로 보는 유럽 브랜드들은 각 국가의 문화유산을 후원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다"며 "유럽 중심이었던 각 브랜드의 사회 공헌 활동이 최근 한국에서 활발해진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이 사치품 소비의 50%를 넘기는 등 아시아 시장이 확장하는 데에 연유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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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에 부합
"특권계층 홍보 수단 전락" 비판도
#1. 경복궁 사정전은 조선시대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본 곳이다. 조정 신하들이 임금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하는 약식 조회인 '상참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상참의에 사용됐던 용교의(의자)와 용평상(임금이 집무를 볼 때 앉는 평상)의 재현품이 지난달부터 사정전에 전시 중이다. 재현을 맡은 건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 2015년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에르메스가 업무 협약을 맺고 진행한 조선 궁궐 복원 사업의 일환이다. 에르메스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덕수궁 함녕전(2015~2017년)과 즉조당(2018~2020년)에 이어 올해는 경복궁 사정전, 근정전(하반기 예정)의 궁궐 장식과 집기를 재현한다.
#2. 교태전은 경복궁 중건 이후인 고종 때부터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된 전각이다. 벽면에 걸려 있던 '화조도'와 '원후반도도' 등 부벽화(종이나 비단에 그려 벽에 붙인 그림)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왕비의 모성애와 부부 해로를 상징하는 원숭이와 앵무새를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이 그림들의 모사도가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의 후원으로 다시 교태전에 걸린다. 2022년 국가유산청과 사회 공헌 활동 업무 협약을 맺은 구찌는 올해 8개월간 모사도를 제작해 연말쯤 공개한다.
에르메스, 구찌, 샤넬... 명품들의 '다른 나라 문화유산' 사랑
이른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의 전통과 역사가 깃든 문화유산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사회 공헌이 명분이지만, 의도는 전략적이다. 인류 문화유산의 역사적·미학적 속성을 초고가 럭셔리(사치품) 브랜드의 정체성 강화에 쓰는 것이 속내다.
럭셔리 브랜드의 문화유산 사랑은 궁궐이나 서화 같은 유형유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 브랜드 샤넬은 2022년부터 매년 전통문화·예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장인 정신을 갖춘 각국의 무형문화유산 장인과 공예가를 선정해 전시를 연다. 에르메스는 궁궐 내 집기 재현품을 제작하면서 소목장(목재 세간 제작), 두석장(금속 장식), 칠장(옻칠), 입사장(은사 장식), 다회장(전통 매듭) 등 국가무형유산과 협업했다.
이 같은 작업은 해외에서 더 활발하다. 2019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전소되자 루이뷔통, 크리스찬 디올, 펜디 등을 소유한 프랑스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2억 유로(당시 환율 약 2,568억 원)를 기부했다. 구찌, 보테가베네타, 생로랑 등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 그룹 케링도 1억 유로(당시 환율 약 1,283억 원)를 내놓았다.
"전통+장인정신=명품의 정체성"
'전통'과 '장인 정신'은 럭셔리 브랜드가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수단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전형연 국립목포대 인문콘텐츠학부 교수는 "'전통'과 '장인 정신'을 명품과 보통 상품을 나누는 기준으로 보는 유럽 브랜드들은 각 국가의 문화유산을 후원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다"며 "유럽 중심이었던 각 브랜드의 사회 공헌 활동이 최근 한국에서 활발해진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이 사치품 소비의 50%를 넘기는 등 아시아 시장이 확장하는 데에 연유한다"고 설명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달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으로 재편된 '국가유산(옛 문화재) 관리 체제'와 합이 맞는다. 문화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다수가 향유하게 하는 것이 새 체제의 골자다. 정상철 한국전통대 미래문화유산대학원장은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과거 패러다임에서는 모든 것이 공공 부문에 맡겨져 있었는데, 민간의 고급 브랜드과 협력하면서 해외 홍보 기회를 넓힐 수 있고 유산의 가치가 발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문화유산이 특권 계층만을 위한 브랜드를 홍보하는 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 패션쇼가 대표적이다.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최열 미술사가는 "전근대 문화유산인 궁궐을 국민들에 개방한 건 옛 왕조의 특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시민 모두가 공유한다는 의미"라며 "자본주의의 특수한 계급만 누리는 브랜드와의 협업은 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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