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 대통령의 ‘종’?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6.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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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법에 따른 통치가 아니라 법을 임의로 사용하는 통치 속에 투명성과 책무성은 후퇴하고 공사의 구분이 흐려지는 가산제 국가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아마도 이것이 국회의장 선출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 당원 참여 논쟁이 발생한 진짜 원인일 것이다. 대통령은 독주하는데 협치 타령만 하며 개혁과제를 미룬 21대 국회에 대한 당원의 분노였다.

정치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대중의 무관심과 전문가에 대한 의존이 대의제의 특징이며, 따라서 이는 불가피하게 과두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 엘리트가 서로 이득이 되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타협하고 합의하는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복합적으로 분화된 정부나 정당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이 설 자리는 없다. 자신을 대표해줄 사람을 뽑은 뒤에는 더는 참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윤 대통령이 우매한 대중에게 그의 출중한 업적을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나,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힘든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 부재를 이유로 안건 상정조차 하지 않는 것이나 다 유사한 맥락에서 발생한 일들이다.

충분한 참여를 보장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는 대중이 엘리트에 의해 휘둘릴 수 있는 존재라는 관점에 기반을 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교활한 지도자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선출된 정치 엘리트가 합법의 외양을 억지로 꾸며낸 채 강력한 사적 이익이나 지배층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권력을 오남용할 가능성은 없는가? 대중의 참여는 정치 엘리트가 만든 정책이나 시스템을 지원하고 환호해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의사결정의 여러 차원마다 기득권이 법과 질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 험난한 우리의 현대사는 이런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 온 것이 엘리트가 아닌 참여하는 국민이었음을 증명해왔다.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은 정치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가 한쪽이 권력을 얻으면 다른 쪽은 권력을 잃는 제로섬 투쟁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다. 대중은 참여의 기회가 부여될수록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며 그의 개인적 이해와 선호를 공공의 이해와 연결하는 더 나은 참여자가 되어간다. 민주적 지도자는 대중이 축적한 이해와 선호를 구체화하여 효과적으로 기획해 나감으로써 한 단계 더 높은 집합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이끌어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그도 더 큰 역량을 가진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최근 대통령은 자신이 국정농단으로 구속했던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대통령실로 불러들였다. 정치가란 다 거기서 거기이며 서로 뒤를 봐주는 관계에 있다, 그러니 촛불을 들어보았자, 대통령을 바꿔보았자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긴 최근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안동완 검사의 공소권 남용 탄핵소추를 기각하기도 했다. 뭘 해도 국가기관을 장악한 판검사 엘리트는 건드릴 수 없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가장 압권은 바로 이런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해야 할 집권 여당이 국민 다수가 원하는 ‘채 해병 특검법’은 거부한 채, 군대의 잘못된 폭력적 관행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젊은 훈련병의 영결식 날 대통령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그와 함께 뭉치자고 소리쳤던 일이다. 국민의 힘보다는 대통령의 ‘종’이 아닐까?

촛불로 이룬 정권 교체의 성과를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해서 국민이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가? 그렇다면 민의가 폭발할 때까지 기다려보라. 더 멀리 뛰려면 몇 걸음 물러서야 하는 것처럼 더 크게 휘두르려면 주먹도 먼저 뒤로 움츠러져야 한다. 대통령의 어퍼컷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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