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로봇수술 대기 늘었어요"... 가임력 보존, 빠른 회복 장점

전하연 2024. 6.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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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강경보다 로봇 원하는 환자 많아"
술기 배우려는 산부인과 의사 증가
전립선암 수술은 이미 로봇이 대세
"여성 대상 임상연구 더 많아져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용 로봇을 활용해 자궁근종 제거 수술을 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요새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는 로봇수술 대기 환자가 복강경 수술 대기 환자보다 많아요.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죠."

여성질환 전문가인 이정렬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요즘 로봇수술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이 커졌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비단 이 병원만이 아니다. 소경아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로봇수술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여성질환 로봇수술 수요 증가는 술기를 익히려는 의사 수에서 확인된다. 한 민간 로봇수술 교육기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수강 의사 990명 중 320명(32%)이 산부인과였다. 2016년만 해도 교육받은 의사 중 산부인과 비중이 0%대였으나, 2020년대 들어 30%를 훌쩍 넘겼다. 2022년에는 44%까지 뛰었다. 이 기관 관계자는 "로봇수술을 배우려는 산부인과 의사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남성질환에선 로봇수술이 오래전부터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성질환에는 여러 이유로 도입이 더뎠다. 그러나 수술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로봇수술이 가임력 보존과 수술 후 회복에 유리하다고 알려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근종만 떼내고 정교하게 꿰매

수술이 필요한 여성질환으로 가장 흔한 게 자궁근종이다. 자궁에 생기는 양성 종양인데, 호르몬 치료가 어려우면 수술로 제거한다. 자궁근종을 발견하는 20·40대 환자가 2022년엔 36만 명을 넘어 전체 환자의 60%를 차지했다. 특히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임신 전 자궁근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근종이 자궁 내 수정란 착상 부위에 생기거나 크기가 크면 난임이 되거나 유산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자궁근종 수술 대다수는 복강경을 이용한다. 배꼽과 하복부에 지름 2cm 이내 구멍을 1~3개 뚫고 수술기구를 집어넣어 종양을 떼낸다. 의사가 작은 구멍을 통해서만 기구를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정교한 수술엔 한계가 있다. 근종이 너무 크거나 골반, 나팔관 같은 다른 부위와 유착이 의심되면 하복부를 10cm가량 절개하고 수술한다. 개복 수술은 출혈량이 많아 회복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4~7일 입원한다. 간혹 수술기구가 자궁이나 난소를 건드리는 경우가 생긴다. 또 수술 부위가 자칫 잘 꿰매지지 않으면 이후 임신했을 때 자궁이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

로봇수술은 복강경과 개복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구멍이 작아 출혈량이 적고, 다음 날 퇴원할 만큼 회복도 빠르다. 로봇 팔은 사람과 달리 360도 회전하는 데다 수술 부위를 1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어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이정렬 교수는 "자궁 손상을 최소화하고 근종을 완전히 떼낼 수 있기 때문에 임신을 계획 중인 환자에게는 로봇수술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로봇수술과 가임력의 관계를 정확히 입증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소경아 교수는 "로봇수술은 근종이 크거나 다른 장기와 유착됐어도 가능하고, 절개 부위도 튼튼하게 봉합되기 때문에 임신이나 출산 때 자궁 파열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이정렬 산부인과 교수가 로봇수술 집도 장비인 '서전 콘솔(Surgoen Console)'에서 로봇 팔을 조종하고 있다. 서전 콘솔 내부의 카메라는 환부를 10배 이상 확대해 보여준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단, 돈이 많이 든다. 개복과 복강경 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돼 자궁근종 환자가 내는 비용은 100만~200만 원 선이다. 반면 로봇수술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 환자 개인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부담해야 할 수술비가 1,000만 원이 넘을 수 있다.

의료진이 수술용 로봇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의과대학에선 로봇수술 술기를 거의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은 대개 민간 교육기관에서 별도 교육을 받거나 자격증을 딴다. 때문에 로봇수술을 고려한다면 의사가 관련 교육을 받았는지, 혹은 병원이 로봇수술 역량이 있는 곳인지 등을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4명 중 1명 vs 10명 중 9명

의료기기 업계에선 현재 자궁근종 환자 4명 중 1명이 로봇수술을 받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으로 이 비율은 빠르게 높아질 거라는 예상이다. 그래도 대표적인 남성질환인 전립선암에서는 이미 환자 10명 중 9명(업계 추산)이 로봇수술을 선택하는 것과 비교하면 더딘 편이다.

일각에선 남성 중심으로 발달해온 의학의 역사가 로봇수술 도입 속도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이 나온다. 의료 현장에서 처음 쓰인 수술용 로봇이 1988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대가 개발한 '프로봇'이었는데, 이는 전립선 수술에 특화한 로봇이었다. 2000년 수술용 로봇으로 세계 처음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도 전립선 질환 위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내 첫 로봇수술도 2005년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에서 진행한 전립선암·담낭절제술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에 반해 최초의 부인과 로봇수술은 미국이 2002년(자궁절제술), 우리나라는 2006년(세브란스병원의 전자궁절제술)이었다. 전립선이 골반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탓에 자궁보다 개복이나 복강경 수술이 더 어렵다는 점이 로봇수술 도입 속도를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로봇 기술이 고도화하고 의료진의 술기가 빠르게 향상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로봇수술의 장점과 혜택이 성별에 관계 없이 원하는 환자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남성 질환에 로봇수술이 쓰인 역사가 더 길다 보니 남성 환자의 임상 데이터가 더 많다"며 "여성 대상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하연 인턴 기자 psstel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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