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에어컨과 화학기술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 여름은 역대 최고의 더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평년보다 이른 무더위와 극한 폭염까지 예보됐다. 여름 더위가 본격화되면서 에어컨 사용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에어컨은 아주 고마운 장치이지만, 한편으로는 전기를 많이 소모해 지구가 더워지는데 큰 일조를 하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돌이켜 볼 때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모하고 직·간접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속도로 증가시켜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21세기 우리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휴대전화와 인터넷일 것이다. 하지만 휴대전화 충전 이외에도 데이터 사용에 따른 전기소모량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휴대전화를 활용하는 모든 일들은 데이터센터를 거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신사, IT기업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기관은 각각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에어컨 사용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고성능 컴퓨터들이 서로서로 연결돼 요구받는 일들을 24시간 365일 쉼 없이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고성능 컴퓨터들은 항상 섭씨 18℃에서 24℃ 정도의 실내온도를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만약 에어컨이 없다면 데이터센터는 최대 90도 이상 온도가 증가하고 결국에는 작동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퍼스케일의 데이터센터 냉방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량은 우리나라 평균 원자력발전소 규모 1기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의 3분의 1을 사용해야 하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는 차가운 바닷속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연구를 하고 있고, 구글은 북극과 가까운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확보했다. 실제로 네이버의 데이터센터는 우리나라에서 연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춘천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기술의 발전은 필수적이다. 에어컨의 핵심 중 하나인 냉매를 제조하거나 다루는 기술은 화학기술에 더욱 밀접하다. 에어컨 냉매는 기화됐다가 다시 액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를 시원하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 마당에 물을 뿌려주면 순간적으로 시원함을 느끼는 것처럼, 물이 더운 열기에 의해 수증기로 변하며 주변의 열을 빼앗아 주변의 온도가 내려간다.
과학자들은 10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에어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마당에 물을 뿌리는 원리를 사용하는 새로운 에어컨 기술은 물을 머금는 방식의 냉방이라는 의미로 '수분흡착식 냉방'이라고 부른다. 자연냉매로써 온난화에 전혀 영향이 없는 '물'을 냉매로 사용하고, 에어컨 내에서 물이 순환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기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상적으로는 지금의 5분의 1 수준의 전력소모가 예상된다. 하지만 기존 에어컨처럼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냉매를 압축하고 순환시키는 펌프역할을 해야 하므로, 결국 화학기술을 통해 물을 잘 머금고 최소의 에너지로 물을 뱉어내어 지속적으로 순환시키는 신소재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신소재 중 하나가 바로 'MOF(Metal-Organic Framework) 수분흡착제'이다. MOF 기술은 수분을 효과적으로 흡착해 냉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소재로, 에어컨 가동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MOF 기술은 현재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개발 중이며, 기술이전 후 상용화를 위해 산업계와 협력 중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전기 소비 문제를 크게 완화하며,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이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에어컨이, 빠른 시일 내에 지구와 우리를 시원하게 하는 대청마루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황동원 한국화학연구원 화학공정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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