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어디에 있을까 [기자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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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생.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안온 작가의 프로필 첫 두 문장이다.
하루빨리 돈 버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글을 쓰고 싶었으나 스무 살 이후 글쓰기보다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그 자리에서 안 작가는 1만4000원 책값을 염려했다.
그 풍경을 보며 가난은 어느 시기에나 충분히 말해지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일인칭으로 쓰였으나 일인분짜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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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 지음
마티 펴냄
‘1997년생.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안온 작가의 프로필 첫 두 문장이다. 하루빨리 돈 버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글을 쓰고 싶었으나 스무 살 이후 글쓰기보다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그 가난하고 지난한 날에서 지나간 불온을 기록하고자’ 책을 썼다.
지나간 불온은 작가의 손에서 생생한 현재가 된다. 기억은 멸균우유에서 시작한다. 학교에서 그에게 멸균우유를 주었다. 실온 보관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복지 대상 아동을 향한 배려였으나 ‘주는 방식에는 배려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번호가 불리면 교무실로 가서 우유를 받아든 뒤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주공아파트에 사는 동안 정치인이 덥석 그의 손을 잡고 밝게 자라는 아이여서 고맙다고 했다.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었다. ‘동정마저 전시하는’ 이들은 작가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 ‘가난하고 어린 사람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온도는 요동치곤 했다. 취소했다가 사과했다가, 깔보았다가 추어올렸다.’ 자신에게 도취되었을 뿐, 실은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다. 복지제도의 당사자로서 각종 제도의 특징과 한계도 정리해놓았다. 보태거나 뺄 것 없는 밀도 있는 문장은 단번에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그는 가성비가 좋아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가난과 가난하지 않은 것 사이 벽이 허물어졌다.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와 냉전 끝에 본인 의지대로 국어국문과를 택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성적이 떨어져 장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살기 위해 했던 학원 일로 이력을 채워온 그는 언젠가 학원을 창업하겠다고 생각한다. 생존의 방식이 곧 미래가 된 셈이다. 작가가 청년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안 작가는 1만4000원 책값을 염려했다. 독자의 여건을 고려한 결과였다. 그 풍경을 보며 가난은 어느 시기에나 충분히 말해지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일인칭으로 쓰였으나 일인분짜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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