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법원이 특종을 한다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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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번 호를 최종 마감하는 5월30일 목요일 오후, '법원발' 굵직한 뉴스가 연이어 쏟아졌습니다.
〈시사IN〉 제871호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다루기도 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판결도 이날 오후 대법원에서 나왔습니다.
'법원이나 헌재발 소식만 취합하면 다음 호 아이템 너끈히 채우겠는걸?' 생각하던 시사주간지 편집장은 불현듯 발끈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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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번 호를 최종 마감하는 5월30일 목요일 오후, ‘법원발’ 굵직한 뉴스가 연이어 쏟아졌습니다. 오후 3시경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속보로 떴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해임안) 가처분 신청의 인용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시사IN〉 제871호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다루기도 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판결도 이날 오후 대법원에서 나왔습니다. 충남도의회가 가결한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충남교육청이 제기한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대법관 전원일치로 인용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날 여러 결정이 나왔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및 ‘유우성 보복 기소’ 사건과 관련해 현직 검사 가운데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 소추된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에 대해 헌재는 ‘탄핵안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납부 대상이 확대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단도 비슷한 시각에 나왔습니다.
‘법원이나 헌재발 소식만 취합하면 다음 호 아이템 너끈히 채우겠는걸?’ 생각하던 시사주간지 편집장은 불현듯 발끈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왜 자꾸 법원이 특종을 하지?’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의 모든 갈등과 과제가 오로지 한곳, 사법부로 향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초등학생끼리 사소한 다툼부터 정치권 내 여러 분쟁까지, 어떤 규모와 종류의 갈등이든 일단 소장을 접수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며, ‘법대로 해!’를 외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안과 관련된 팩트,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 해결을 위한 대안과 방안이 주로 사법부 안에서만 나오고, 또 오로지 그것들만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주 정국을 뒤흔든 ‘채 상병 수사 외압 윤석열 대통령 통화 기록’도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입니다. 법정에서나마 진실이 밝혀질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만, 법원 밖에서는 이제 정직한 사과와 고백도, 정의로운 증언과 제보도, 원만한 양보와 합의도 사라져간다는 점에서 다소 씁쓸해집니다.
법대로만 하면 괜찮은 걸까요. 내 마음에 드는 판결이 나오면 그래 보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어제는 법원 결정에 환호하다가 오늘은 욕하고 비판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문득, 우리가 왜 이렇게 ‘법원 바라기’가 되어버렸을까 생각해봅니다.
삼권분립의 나머지 두 기둥, 입법부와 행정부에 그만큼 기대를 잃은 탓이 아닐까요. 국민들이 아무리 투표로 민심을 표출해도, 국회에서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 가결시켜도 바뀌는 게 없는 현실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대통령의 N번째 거부권 행사 앞에 모든 민의와 합의와 숙의가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모습이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되풀이되니까요. 바라볼 곳은 법원밖에 남지 않게 된 슬픈 시대를 핑계 삼아, 법원에 특종을 뺏긴 ‘낙종의 변’을 해봅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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