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함께한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15개월의 기록

이은기 기자 2024. 6. 4.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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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공포되면서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15개월 동안 유가족에게 서울광장 분향소는 시민들을 만나는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었다.
5월22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이성기씨(왼쪽)와 오영교씨가 서울광장 분향소 내 유가족 쉼터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윤석보씨가 보라색 얇은 스티로폼을 필요한 길이에 맞춰 잘라냈다. 그다음 공정은 윤씨와 마주 앉은 김남희씨가 맡았다. 김씨는 잘린 스티로폼 중간에 접착제를 붙여 보라색 리본을 만들었다. 윤석보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윤성근씨의 아버지다. 김남희씨도 딸 신애진씨를 이태원 참사로 잃었다. 5월21일 두 사람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 탁자에서 한참 리본을 만들었다.

이성기씨는 정리 담당이다. 윤씨가 잘라낸 스티로폼을 예쁘게 정돈해 상자에 담았다. 경기 성남에 사는 이씨는 2022년 12월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될 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분향소를 찾았다. 지난해 2월4일 분향소가 서울시청 앞으로 이전하고 또다시 이전 논의가 나오는 지금까지 궂은 날도 휴일도 개의치 않았다. 원래 하던 일은 다 접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동민씨)이 여기 있잖아.”

5월14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공포되면서 서울광장 분향소 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국가 등은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추모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 서울시는 현재 서울광장 분향소를 다른 공간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가족들도 언제까지나 서울광장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기억과 치유 공간으로서의 분향소 역할이 사라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더 알리지 않으면 잊힐 거라는 위기의식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동민씨의 아버지 이성기씨가 5월22일 분향소로 출근해 향을 피우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는 매일 아침 8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운영된다. 이성기씨는 오전 10시쯤 분향소에 도착한다. 보라색 조끼를 입으면 일과가 시작된다. 발전기에 기름을 채우고 바닥을 치우는 등 분향소를 관리하고 추모객을 맞는 게 주요 업무다. 분향소 정리를 얼추 마치면 아들의 영정 앞에 놓인 향을 피운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 왔다. 간밤에 잘 있었냐.”

다른 유가족들은 애정을 담아 분향소를 가꾸는 이씨를 분향소 ‘명예소장’이라고 부른다. 분향소 곳곳 이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에 급하게 짓느라 바람 불면 천막이 찢어지고, 비가 오면 물이 샜다. 그때마다 보수 공사를 했다.”

이씨 말대로 서울광장 분향소는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해 2월4일 다급하게 설치됐다. 당초 유가족들은 녹사평역에서 광화문광장으로 분향소를 옮길 계획이었다. 유가족들에게 녹사평역 분향소는 ‘아픈 기억’이다. 보수 단체 ‘신자유연대’ 회원들이 가족을 잃고 거리로 나와야 했던 유가족에게 모욕과 조롱을 가했다.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는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왜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라고 그때를 기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녹사평역 분향소를 오가는 시민들의 왕래가 줄었다. 2022년 12월19일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니라면 받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요구에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집으로 가야겠구나.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화문광장으로 가서 억울한 마음을 알리자고 마음을 모았다.” 이정민씨의 말이다. 반대하는 유가족도 많았다. 광화문광장처럼 더 넓은 곳으로 가면 더 많이 공격받을 거라는 걱정도 나왔다. 그렇지만 더 알리지 않으면 잊힐 거라는 위기의식이 컸다. 유가족들은 논의 끝에 분향소 이전을 결정했다.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023년 2월4일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만든 뒤 영정사진을 설치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유가족들의 결정을 알게 된 서울시는 부랴부랴 녹사평역 지하 4층 공간을 대체지로 제안했다. 시민들 왕래가 적은, 외진 장소였다. “우리를 치우려는 것 같았다(이정민씨)”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숨도 쉬지 말라는 의미였다(이성기씨)”. 서울시에 당초 계획대로 광화문광장 북쪽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사 99일째이던 지난해 2월4일 경찰은 광화문광장에 차벽을 치고 유가족과 시민들의 진입을 막았다.

유가족은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참사 100일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이정민씨는 “절박했다. 영정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단 서울광장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유가족들과 막으려는 서울시 공무원 사이 충돌로 유가족 한 명이 쓰러졌다. 그뒤로도 분향소를 철거하려는 서울시와 지키려는 유가족들 사이에 대치가 이어졌다.

아침에 분향소 문을 열고 밤 9시면 닫는 지금과 달리 지난해 7월29일까지는 24시간 3교대로 분향소를 지켰다. 언제 분향소가 철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유가족들과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구성원들, 자발적으로 ‘분향소 지킴이’로 나선 시민들이 함께했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서울시는 결과적으로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곳은 분향소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시민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5월22일 오전 봉사활동을 하는 김미경씨가 리본을 만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의 ‘함께하겠다’는 말들이 유가족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김미경씨도 2022년 12월14일 분향소가 녹사평역에 있을 당시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 중 한 사람이다. 잠깐만 서 있어도 발이 얼 것 같은 날씨였다. 유가족들이 너무 추워 보였다. 이틀 후인 2022년 12월16일 ‘딱 하루만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차를 나누자’라고 생각했다가 2024년 5월22일 현재까지 분향소에서 차 나눔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보고만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유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까지는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향소를 찾은 이들 중에는 3개월 동안 매일 4시간씩 기도를 한 신학대 학생도 있었다. 희생자 영정을 보고 “내가 CPR을 했던 친구가 왜 여기 있느냐”라고 슬퍼하던 시민도 있었다. 분향소를 찾아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느냐’라고 묻던 한 일본인은 이따금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거리행진 대열에 함께 서 있었다. 김남희씨는 “분향소를 찾아 함께 아파해주신 시민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무너졌던 순간도 있었다. 진세은씨 아버지 진정호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악다구니를 들을 때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진씨가 분향소 지킴이를 하던 때, 꼬마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지나갔다. 아이가 ‘이 언니들은 누구야?’라고 묻자 엄마가 답했다. “너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돼.” 그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아닌데···우리 세은이 말 잘 들었는데···.” 박현진씨 어머니 이옥수씨는 “나는 그냥 싸워버렸다”라고 했다. 이씨가 시민들이 남겨둔 추모 문구를 찬찬히 보고 있던 때였다. “유가족이 옆에 있는 줄 몰랐는지, 누가 ‘놀러 가서 죽은 애들’이라고 하더라.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똑같이 겪어봐야 이 마음을 알겠냐’라고 맞받아쳐버렸다.”

5월22일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응어리 풀 공간이 제일 필요했다”

그래도 유가족들은 틈을 내 계속 분향소를 찾는다. 5월20일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보미씨의 생일이었다. 진정호씨는 “오늘 보미 생일이라 보미 아빠(김말봉씨)가 와서 ‘케이크 하나 놓고 싶어’ 그러더라. 그래서 케이크를 사서 같이 축하했다. 참사 이후 다른 곳에서는 내가 농담을 해도 아무도 안 웃는다. 여기서는 애들 얘기도 그렇고, 어떤 이야기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 그게 좋다”라고 말했다. 분향소 명예소장인 이성기씨는 집에서는 아직도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분향소 근처에서 다른 유족들과 수다 떨며 함께 먹는 점심이 끼니의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씨 어머니 박미화씨도 5월21일 경주빵과 찰보리빵을 넉넉히 챙겨 분향소로 향했다. 광주에 사는 오영교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딸 오지연씨의 아버지다. 오씨는 한 달에 두 번씩 분향소를 찾을 때마다 분향소에서 새로운 유가족을 만난다고 했다. 이정민씨는 “유가족에게 분향소는 치유의 공간이다. 여기가 없었다면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없었을 테고 각자 집에서 아프고 힘들었을 거다.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아프다. 여기 오면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는 건지 몰라도 아프지 않다. 응어리를 풀 공간이 우리한테 제일 필요했다는 걸 몸으로 절실하게 느낀다”라고 말했다.

유가족에게는 변상금 문제도 남아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6일 ‘무단점유’를 이유로 변상금 2900만원을 유가족협의회 측에 한 차례 부과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변상금을 납부했다. 서울시는 그 이후부터 올해 4월 말까지 발생한 변상금 1억6800만원(하루에 43만2710원)도 추가로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유재산법에 무단점유자에 대해 (변상금을 징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별법이 통과됐다고 해도 서울시에서 변상금을 감면하거나 면제할 수는 없다. 부과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바람은 ‘이태원 참사가 잊히지 않는 것’이다. 오영교씨의 말이다.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해 아이들이 많이 힘들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분향소는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했다는 상징이다. 시민들이 쉽고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분향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기억하지 못하면 참사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5월22일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김미경씨(형광색 조끼)가 지킴이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리본을 만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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