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남중국해 군사 압박 노골화… 주변국 美와 손잡고 견제 분주 [심층기획-中 vs 동남아·호주 갈등 격화]

박수찬 2024. 6.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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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해군력 필리핀 EEZ서 수시로 포착
해상구조 훈련 등 실시하며 갈등 키워
동시에 우방 캄보디아와 합동군사훈련
타이만 등 인접 해상 영향력 확대 노려
필리핀·대만, 美·日 ‘하드파워’에 기대
방위협정 체결·합동군사훈련 등 실시
말레이·印尼 꾸준히 군사력 증강 시도
무기구입 등 中 맞설 방어체계 구축 전력
남중국해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긴박해지고 있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 등에 기지를 만들고 해·공군력을 증강하면서 군사적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남중국해를 사실상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른 주변국들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의식, 중국과 정면대결을 하려는 움직임은 꺼리고 있으나 군비증강과 군사훈련을 실시해 영토 수호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일본 등도 동남아 국가들의 군사적 움직임을 지원하고 있어서 남중국해에서의 힘겨루기가 한층 강해질 조짐도 엿보인다.
남중국해에서 정례 순찰을 하는 중국군 함정. 글로벌타임즈 제공
◆동남아서 영향력 확대하는 중국

중국은 군사적·비군사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힘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필리핀 현지 매체 마닐라타임스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남중국해 해양활동 감시 프로젝트인 시라이트의 분석을 인용해 지난달 9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중국 해상민병대 선박 82척이 스프래틀리 군도의 윗슨 암초에 있는 것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되어 있는 윗슨 암초는 필리핀 팔라완섬 서쪽 320㎞ 지점에 있으며, 중국 본토와는 약 1060㎞ 떨어져 있다. 2021년 4월에도 중국 선박 약 220척이 이곳에 몰려와 머무르자 필리핀이 크게 반발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필리핀 해경과 군이 윗슨 암초에서 중국 선박 125척을 관측했다. 시라이트 국장인 레이 파월 전 미 공군 대령은 마닐라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주변국 EEZ 안에 있는 암초를 차지하고자 전초기지를 지을 필요도 없다”며 “중국 해상민병대의 규모만으로 필리핀의 대응 능력을 압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해안경비대는 최근 스카버러 암초 일대에서 해상구조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스카버러 암초를 포함한 남중국해 섬들을 놓고 필리핀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해경선에 물대포 공격을 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조훈련을 실시한 것은 중국이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조치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남해 구단선’을 설정, 남중국해 곳곳에 인공섬을 건설해 군사기지로 활용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동남아에서 군사적 입지를 굳히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지난달 16일 캄보디아와 연례 합동훈련인 ‘금룡 2024’를 실시했다. 훈련에는 캄보디아군 1315명, 중국군 760명과 중국 군함 3척, 캄보디아 군함 11척 등이 참가했다. 훈련비는 중국이 부담했다. 이 훈련은 2016년 캄보디아가 미국과 합동훈련을 취소한 뒤 처음 시작되어 매년 실시되어 왔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로서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고, 군사협력도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도 캄보디아를 발판으로 남중국해와 타이만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은 시아누크빌 인근 레암 항에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이은 제2의 중국 해외 해군기지를 건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레암 항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건설됐고, 미군과 캄보디아군 합동훈련에서 사용된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이를 해체한 뒤 중국 자금으로 공사를 했다. 미국은 레암 항이 남중국해와 이어지는 타이만에서 중국 해군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해군 055급 구축함이 해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군사력 늘리는 동남아·호주

중국은 미국을 동남아에서 밀어내고 남중국해 접근을 저지하며, 대만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남중국해와 인접한 동남아 국가들과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중국의 ‘하드파워’에 주목하는 이유다.

남중국해와 인접한 국가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는 미국, 일본 등 서방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거나 독자적인 군사력 증강을 통해 억제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 필리핀은 미국, 일본 등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의 행보를 견제하려 하고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를 서방과의 안보협력으로 메워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에서 지난 4월 열린 미국·일본·필리핀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우려를 표하며 방위 협력을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필리핀은 4월 말부터 5월 초에 걸쳐 미국과 함께 발리카탄 연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미군과 필리핀군 1만6770명이 참가한 이번 훈련은 1991년 이래 처음으로 필리핀 영해 밖의 남중국해에서 이뤄지는 등 중국 압박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리핀 해군 호위함 안토니오 루나함(맨 앞)이 4월7일(현지시간) 미국, 일본, 호주 군함과 함께 공해상에서 합동 해상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대만에서 160㎞ 떨어진 잇바야트섬에선 미국과 필리핀 해병대원들이 마을을 탈환하는 훈련을 했다. 필리핀 루손섬 북서쪽 일로코스노르테의 라오아그 모래언덕에선 침략군 상륙을 격퇴하는 훈련이 이뤄졌으며, 남중국해에선 중국산 유조선을 필리핀 해군 호위함이 한국산 해성 대함미사일 등으로 격침하는 훈련도 했다. 필리핀은 프랑스·뉴질랜드 등과는 양국 병력이 상대국을 방문해 군사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문군 지위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도 공동훈련 가능성이 제기된다.

필리핀은 한국 HD현대중공업에는 기존의 호위함 2척 외에 초계함 2척과 원해경비함 6척을 발주했고, 일본에선 대형 순찰선 5척을 2027∼2028년에 들여올 예정이다. 디젤잠수함 도입도 거론되는데, 한화오션이 수주를 노리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군사력 증강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러시아 무기 의존도를 낮추면서 새로운 무기공급국을 찾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산 무기 운용이 어려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선 ATR 72 해상초계기 2대를 2026년부터 들여오기로 했고, 튀르키예로부터는 2400t급 신형 아다급 초계함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방공망 강화를 위해 서방에서 신형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체계를 구매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이 사업엔 LIG넥스원이 생산해 한국군과 사우디군 등에서 운용하는 천궁-Ⅱ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국방부는 지난 1월 제1차 국방정책협의회를 개최해 사이버 안보, 연합훈련, 방위산업 등 분야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해군력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방산업체 핀칸티에리와 타온 디 레벨급(5000t) 원양초계함 2척 도입 계약을 맺었다. 비행기 조종석과 유사한 형태의 첨단 함교 시스템을 갖춘 함정으로 해양 경비와 인도적 재난구호 등에 투입이 가능하다. 프랑스 나발그룹이 생산하는 스콜펜급 잠수함 2척 구매를 추진하는 한편 4척의 잠수함을 추가 도입하는 사업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장기적으로 잠수함 12척을 운용한다는 방침이어서 잠수함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태국도 노후한 F-16A 전투기 12대를 신형 기종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미국 록히드마틴 F-16V와 스웨덴 사브 그리펜 전투기가 최종 후보에 올라 있다.
호주 해군 안작급 호위함 아룬타함이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협의체)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할 호주는 대형함정 규모를 지금의 2배로 확대할 방침이다. 호주는 향후 10년간 111억호주달러(약 9조7000억원)를 투입해 11척의 신형 범용 호위함과 6척의 헌터급 호위함, 승무원 없이 운항하는 최첨단 수상 전투함 6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11척인 대형함정은 2040년대는 26척으로 늘어나게 된다. 25척의 소형 전투함을 추가하고 호위함과 구축함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설치한다. 이 가운데 신형 범용 호위함 11척 건조 사업에서 한국의 대구급(3000t) 호위함이 독일, 일본, 스페인과 더불어 후보에 포함되어 있다.

남중국해와 인접한 국가들이 중국의 압박에 맞설 군사력을 확충하고자 무기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불확실하다. 현대전을 치를 수 있는 첨단 무기를 확보하면, 필리핀처럼 미국과 호주 등의 서방 군대를 불러들여 합동훈련을 실시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용이하다. 하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조금씩 무기를 사들이는 동남아 특유의 비동맹주의식 군사력 건설은 ‘규모의 경제’를 약화해서 후속군수지원을 어렵게 하는 문제가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싱가포르와 호주를 제외하면 동남아 국가의 무기구매 효과가 단편적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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