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영화적 체험 통해 다가간 진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4. 6.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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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감독 조나단 글레이저)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나치가 12년 동안 자행한 대학살 이른바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에 끊임없이 저항하게 만든 것은 또 무엇일까.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답은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보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갖고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렇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담장 밖, 꽃으로 만발한 루돌프 회스 장교 부부의 그림 같은 일상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잔학한 진실을 알린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지휘관 루돌프와 가족의 일상을 그리며 홀로코스트의 잔혹함을 알리는 작품으로, 전 세계에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큰 충격을 던진 작품이다.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

영화는 아우슈비츠 내부가 아닌 담장 밖, 평온한 듯 아름다운 듯한 일상을 살아가는 루돌프 회스 장교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홀로코스트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우슈비츠 담장 안의 모습, 홀로코스트의 진실과 공포는 수많은 영화와 다양한 미디어와 책을 통해 봐왔고, 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습을 오히려 배제하고,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담장 안의 잔혹한 세상을 만든 담장 밖의 모습은 얼핏 보기에 인간적이라 더 비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담장 밖 세상이 일상적인 만큼 비인간성과 잔혹성은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이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각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공포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운데,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또 다른 특성인 '청각' 즉 '소리'를 이용해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전달한다. 평화로운 독일 장교 부부와 그들 가족의 일상을 가로지르는 아우슈비츠의 비명과 총포 등 정교하게 디자인된 사운드는 영화 내내 관객들의 시각과 청각에 상반된 정보를 전달한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괴리감과 공포는 상상력과 만나며 더욱더 극대화한다.

사실 시각적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아름답게 꾸며진 세상을 둘러싼 담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 그 교묘하게 만들어진 평화 안에서 얼핏 보이는 균열들, 특히 루돌프의 행동에서 보이는 불안은 만들어진 일상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없게 한다.

담장을 두고 상반된 현실이 펼쳐지는 공간, 그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루돌프 가족의 모습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나 아렌트가 언급했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게 된다. 악은 특별한 존재인 듯 보이지만, 결국 '인간'일 뿐이다.

루폴프 역시 독일군 장교로서 한편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역시 한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자신과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악의 평범성'은 결국 평범한 누군가도 '악'일 수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

루돌프의 전근 소식 이후 생겨난 부부 사이의 균열 이후 보여주는 악(惡)의 일면을 마주할 때, 악의 평범성의 의미는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죽음의 연기와 소리가 담장처럼 루돌프의 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의 아내 헤트비히는 그곳을 꿈꿔온 집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의 삶을 불태우고 짓밟으며 쌓아 올린 행복과 평화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라 할 수 있는 그 생각이 '악'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일상의 평온함을 드러내는 루돌프의 집과 가족들의 모습은 어떻게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는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루돌프의 가족과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폴란드 출신의 비유대인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우오제치크(줄리아 폴라첵)다. 유대인들을 위해 몰래 사과를 가져다 놓는 알렉산드라의 모습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흑백으로 표현된다.

색을 잃었지만, 인간성을 잃지 않은 알렉산드라의 모습은 칠흑 속에서도 환하게 빛난다. 색을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겼지만, 유대인과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은 인간성만은 절대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인간성을 상실한 루돌프 가족은 온갖 색을 품고 있음에도 빛날 수 없다. 비인간성과 인간성의 대비조차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의 기조를 닮았다.

색채와 관련된 상징적인 연출은 영화 시작부터 중간중간 검정, 흰색, 붉은색만이 존재하는 화면으로도 만날 수 있다. 검정, 흰색, 붉은색의 조합은 나치의 상징이자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으로 독일 나치즘(Nazism)의 상징)로 이어진다.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TCO㈜더콘텐츠온 제공

그러나 영화 중간중간 알렉산드라의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스크린 전면을 뒤덮는 흰색과 붉은색의 연출은 나치의 폭압 사이에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폴란드 국기의 상징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저항 의식과 자유를 향한 의지는 알렉산드라의 피아노 연주와 노랫말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꺾이지 않고 저항할 것이라는 의지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야말로 홀로코스트를 버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이다.

이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영화적 체험을 통해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이는 영화관을 떠나는 순간 휘발되는 잠시 잠깐의 얕은 체험이 아니라 밖을 나선 후에도 이어지는 길고 깊은 경험이자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의미와 강점을 너무나도 잘 활용했기에 가능한 경험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105분 상영, 6월 5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메인 포스터. TCO㈜더콘텐츠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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