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로봇 엄지 붙인 육손이, 한 손으로 물병 열고 바나나 껍질도 벗겨

이영완 기자 2024. 6.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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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발가락 압력으로 로봇 손가락 조종
남녀노소 불문 몇 분 배우고 쉽게 조작
로봇 팔 등에 지고 공동 작업도 성공
장애인 재활 돕고 재난현장 작업도 지원
다니 클로드가 자신의 손에 부착한 로봇 엄지손가락을 보고 있다. 로봇 엄지손가락이 손에 결합되면 한 손으로 물병 뚜껑을 열고, 바나나 껍질도 깔 수 있다./Dani Clode Design/The Plasticity Lab

홍콩 영화배우 고(故) 장국영은 숱한 영화를 남겼다. 그중 20년 전인 1993년 12월 한국에서 개봉한 ‘패왕별희(霸王别姬)’를 빼놓고 그를 말할 수 없다. 1929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 아버지가 경극단에 아홉 살 아들을 맡기려 했다. 단장은 아이가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손이라고 입단을 거부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칼로 아들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장국영은 그렇게 경극단에 입단해 영화 제목처럼 초나라 패왕이 이별하는 연인인 우희를 연기했다.

영화처럼 과거엔 손가락이 하나 더 있으면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앞으로 없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만들어 붙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로봇 손가락을 하나 더 붙여 한 손으로 물병 뚜껑을 따고 바나나 껍질도 딸 수 있음을 입증했다. 손가락을 넘어 아예 로봇 팔을 하나둘 추가해 이전에 하지 못하는 동작도 해냈다. 양손으로 키보드를 치면서 로봇 팔로 음료수를 마시는 식이다.

로봇 엄지손가락이 손에 결합되면 한 손으로 커피잔을 잡고 스푼으로 저을 수 있다./Dani Clode Design/The Plasticity Lab

◇아이에서 어른까지 쉽게 로봇 엄지 작동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타마르 마킨(Tamar Makin)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손에 장착하는 세 번째 로봇 엄지손가락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세 번째 엄지라고 한 것은 좌우 손에 원래 있는 엄지손가락에 로봇 엄지손가락이 하나 더 추가됐기 때문이다. 로봇 엄지손가락을 착용한 사람은 한 손으로 물병 뚜껑을 따고, 바나나 껍질도 벗겼다. 한 손으로 커피잔을 잡고 숟가락으로 저을 수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세 개밖에 쥘 수 없던 귤도 네 개까지 문제가 없었다.

연구진은 앞서 2021년 같은 학술지에 로봇 엄지손가락을 처음 발표했다. 재미있는 점은 로봇 손가락을 발가락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로봇 손가락에는 무선신호를 받고 동작을 지시하는 센서가 있다. 이 센서는 발목에 찬 장치와 무선으로 연결된다. 발목 장치는 다시 엄지발가락에 붙인 압력센서 신호를 받는다.

로봇 엄지는 엄지발가락 움직임 대로 작동한다. 오른쪽 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 압력센서가 힘을 감지해 로봇 엄지손가락을 오므리게 한다. 반대로 왼쪽 발의 엄지발가락을 누르면 로봇 엄지가 펴진다. 쥐고 펴는 힘은 발가락을 누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2022년 왕립학회가 주최한 여름 과학전시회에서 남녀노소에게 로봇 엄지를 장착시키고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나이에 맞춰 로봇 엄지 크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3세부터 96세까지 596명 중 로봇 엄지를 작동하지 못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너무 어려서 로봇 엄지가 맞지 않거나 발가락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나머지는 98%는 1분 만에 로봇 엄지로 물건을 집을 수 있었다.

로봇 엄지를 설계한 다니 클로드(Dani Clode)는 “증강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신체 자체의 연장선이 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이번 실험에서 보듯 사람들이 쉽게 빠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한쪽 팔을 잃은 사람에게 이번 로봇 엄지가 더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하나가 그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정서희

◇작업자 등에 진 로봇 팔을 원격조종

마블 영화에서 닥터 옥토퍼스는 몸에 장착한 로봇 팔 네 개로 스파이더맨을 압도했다.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로 다가왔다. 일본 게이오대 연구진은 2018년 8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컴퓨터 그래픽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인 시그라프(SIGGRAPH)에서 배낭처럼 등에 짊어지는 로봇 팔 시스템인 ‘퓨전(Fusion)’을 발표했다. 로봇 팔은 사람의 어깨너머에서 카메라로 작업 상황을 보고 있다가 사람이 부탁한 도구를 집어 전달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퓨전은 원격조종이 가능하다. 대리인의 등에 붙은 로봇이 카메라와 스피커로 현장의 영상과 음향을 멀리 있는 조종자의 가상현실(VR) 헤드셋으로 전달한다. 덕분에 원격 조종자는 현장에 있는 대리인의 시선으로 주변을 보면서 로봇 팔을 조종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리인이 하는 작업을 조종자가 보고 있다가 로봇 팔을 움직여 작업을 도울 수 있다.

몸에 장착하는 로봇팔 퓨전. 멀리 있는 사람이 작업자의 시선으로 현장을 보면서 로봇팔을 작동해 도울 수 있다./일 게이오대

대리인의 팔에 로봇 팔을 묶으면 사람의 행동을 원격조종하는 일도 가능하다. 연구진은 “재활치료사가 VR 헤드셋을 쓰고 로봇 팔과 연결된 환자의 팔을 움직여 재활 훈련을 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재난이나 구조 현장에서 대리인이 전문가가 조종하는 로봇팔의 지시대로 작업할 수도 있다.

산업 현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도 등에 지는 로봇 팔 ‘옥토(Octo)’를 개발했다.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 연구비를 지원했다. 연구진은 등에 진 로봇팔이 무거운 항공기 부품을 떠받치고 작업자가 그 아래에서 안전하게 조립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첨단통신연구소(ATR) 연구진은 뇌파로 등에 장착한 로봇팔을 조종했다. 목이 마르면 음료수에 꽂힌 빨대를 입에 가져왔다.

몸에 붙이는 로봇 손가락이나 로봇 팔은 작업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장애인의 재활이나 재난현장의 작업을 돕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단 오용환 박사는 “몸에 로봇 손가락이나 팔이 더 있으면 사람의 기능을 확장하고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고, 손가락 또는 팔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디바이스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 박사는 “사람이 로봇 손가락이나 팔을 자기 몸처럼 느끼려면 동작을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외부 환경이나 물체에 촉감을 전달하고 받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가 지금처럼 발전해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머지않아 로봇 손가락을 더한 육손이나 로봇 팔 두 개를 붙인 네팔이가 정상인 세상이 될지 모른다. 장국영이 그런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참고 자료

Science Robotic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k5183

Science Robotics(2021),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bd7935

SIGGRAPH(2018), DOI: https://doi.org/10.1145/3214907.321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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