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20년] ①400조원으로 커졌지만, 수익률 2% 안팎 초라한 성적

서한기 2024. 6. 4.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도 인출·해지 등으로 가입 기간 짧아…적립금 자체가 작기에 '일시금 수령'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 기능 제대로 못 해

[※ 편집자 주 =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올해 400조원 가까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앞으로 10년 후에는 1천조원에 이를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연금'이라는 이름과 달리 노후소득 보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연금으로 타가는 경우는 적고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갑니다. 수익률이 턱없이 낮다 보니 연금으로 수령할 만큼 적립 금액이 많지 않아 벌어지는 일입니다. 퇴직연금이 연금화되지 못한 현실과 이유, 해결 방안 등을 세 꼭지로 나눠 송고합니다.]

퇴직연금 <<연합뉴스TV 캡처>>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퇴직 후 국민연금만으로는 근로시기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소득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국민연금만이 국민의 노후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기둥은 아니다. 임금 노동자에게는 퇴직연금이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제도만 제대로 운영해도 34년 가입했을 때 소득대체율이 18% 정도 되는데, 그러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40년 가입 기준 40%)과 합쳐서 50%가 넘기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노후 적정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현실은 딴판이다. 올해 한국 사회에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된다. 그렇지만 중상층 이상의 소득계층에조차 퇴직연금은 이름과 달리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그래픽] 퇴직연금 적립금 현황

퇴직연금 적립금 갈수록 불어나…10년 뒤 1천조원 시대 맞지만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 행정학과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하나는 낮은 수익률이고, 다른 하나는 불안정한 국내 노동시장에서 중도 인출과 잦은 이직에 따른 해지 등으로 퇴직 때까지 가입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인이 쌓아놓은 퇴직연금 적립금이 적고, 그렇다 보니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가면서 '연금'으로 받는 사람이 적다. 특히 종신연금으로 타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다.

퇴직연금이 퇴직 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퇴직연금 제도는 과거 퇴직금 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도입됐다. IMF 외환위기 사태로 많은 기업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한 채 도산해 임금 노동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이런 경험으로 노동자의 노후생활 안정성을 높이고, 퇴직 때 적립금을 연금 형태로 받아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가 처음 퇴직연금제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사 간 이견으로 진통을 거듭하며 합의 도출에 실패했고, 결국 정부 주도로 퇴직연금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2004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유예기간을 거쳐 1년 뒤인 2005년 12월 본격 시행됐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일정 금액(급여의 8.33%)을 보험료로 떼어서 외부 금융기관(퇴직연금 사업자)에 맡겨야 하고, 금융기관은 이를 운용해서 수익을 낸 뒤 돌려줘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매달 보험료를 적립하고, 이 금액을 굴려서 수익을 올린다는 점에서는 국민연금의 운용방식과 비슷하다.

이처럼 어렵게 출범한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해가 갈수록 불어나며 날로 커지고 있다.

제도 시행 1년 후인 2006년 1조원에 못 미쳤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10년 뒤인 2016년 147조원으로 늘었다. 이후 2018년 190조원, 2020년 256조원, 2022년 336조원, 지난해 382조4천억원 등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올해 1분기 현재 385조7천억원으로, 400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연평균 약 9.4% 성장세를 보이면서 10년 뒤인 2033년이면 지금의 2.4 배인 940조원에 이르러 '1천조원 시대'를 눈앞에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IRP 프로젝트 추진 업무 협약식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0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한 IRP 프로젝트 추진 업무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2023.9.20 ryousanta@yna.co.kr

국민연금보다 매우 낮은 수익률 …물가상승률 따라잡기에도 '헉헉'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올해 1천조원을 넘은 국민연금 기금을 추월할 기세로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지만, 운영 실적을 보면 부실하기 그지없다.

적립금 중에서 운용 수익이 기여하는 몫은 아주 적다. 대부분은 가입자가 증가한 데 기인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과 10년간의 연 환산 퇴직연금 수익률은 각각 2.35%, 2.07%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정도 수익률을 보인 것은 지난해 주식시장 강세 등에 힘입어 전년(0.02%)보다 수익률(5.25%)이 많이 회복한 덕분이다.

이처럼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조차 따라잡지 못해 헉헉대는 실정이다. 국민연금보다도 훨씬 못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7.63%로 7%가 넘는다. 이 기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1.94%로 2% 미만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국민연금 수익률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쳤다.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의 3배가 넘는 수익률을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다. 해외의 연기금과 비교했을 때 국민연금의 실적은 중간 정도에 불과해 썩 잘한 것도 아니었다.

민간 금융기관은 시장경제의 혈맥이라 불릴 만큼 핵심 중의 핵심이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온갖 첨단 기법을 동원해 금융시장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금융기관의 이윤이 운용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민간 금융기관이 굴리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공공이 운용하는 국민연금보다 못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경우로, 다른 나라는 전혀 아니다.

다른 나라는 민간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대부분 높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퇴직연금이 발달한 국가의 연평균 퇴직연금 수익률은 7% 이상으로 상당히 높다.

이를테면 스웨덴은 연금 보험료 18.5% 중에서 2.5%를 분리해 민간 금융기관이 운영하는데, 지금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7%가 넘는다. 이게 정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의 낮은 운용 수익률은 한국 퇴직연금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이는 같은 돈을 부었어도 은퇴 때 손에 쥐는 돈이 다른 퇴직연금 선진국과 비교해 상당히 적다는 말이다.

sh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