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대 중국산 전기차의 역습[베이징노트]

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2024. 6. 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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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시진핑 '굴기' 선언 이후 당국 지원으로 성장한 중국 신에너지차 업계
지금은 기술력도 갖추고 글로벌 신에너지차 시장에 '가성비'로 승부수
미국·EU, 중국 당국 지원 내세워 중국산 신에너지차에 높은 무역장벽
현대차그룹 '어부지리' 얻었지만 결국은 중국 기업과 정면승부 벌여야
중국 광둥성 선전 수출 부두의 BYD 수출 차량들. 연합뉴스

"한마디로 당성(黨性)이 좋은 기업입니다"

중국 경제에 정통한 한 재중 관료는 얼마전 세계 최대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생산업체로 올라선 비야디(BYD)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의 말에 함께 자리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제조업체에 무슨 당성을 따지느냐는 의문이 들법도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채택한 중국에서는 당성이야 말로 기업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시 주석을 정점으로 중국 공산당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중국에서 당성이 좋은 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초고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당시 중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상하이자동차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신에너지차 굴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연설을 한다.

그는 "강력한 자동차 제조 국가가 되는 길은 신에너지차 개발에 있다"라며 "이 부문에서 유리한 출발을 해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경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산 자동차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의 자동차를 베껴 만들거나 인수합병, 혹은 합작을 통해 해외 기업의 기술을 강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의 진두지휘 하에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내연기관 자동차 보다 당시로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신에너지차 개발에 몰두하며 기술력을 키워왔고 그 중심에 비야디가 있다.

中 당국 지원으로 급성장한 비야디…美·EU "이게 바로 불공정"


비야디 로고. 연합뉴스

1995년 설립된 비야디는 자동차가 아닌 휴대전화 배터리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사업을 키웠다.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3년으로 5년여 간의 연구개발 끝에 2008년 말 첫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신에너지차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한 비야디는 시 주석의 신에너지차 굴기 선언 이후 날개를 달게된다. 비야디는 정부 중점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정부 보조금은 물론 정부구매, 금융지원 등 온갖 혜택을 받았다.

비야디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당심과 비야디의 사업 방향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렇게 정부의 지원하에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비야디는 2022년 3월부터는 아예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을 선언했고, 2023년에는 세계 최대 신에너지차 생산 기업으로 올라섰다.

최근 미국과 EU(유럽연합)가 중국산 신에너지차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중국 신에너지차 산업 성장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비야디의 성공 스토리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

미국과 EU는 중국산 신에너지차의 과잉생산, 특히 그 배경이 된 중국 당국의 지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부 당국의 막대한 지원하에 저가 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산 신에너지차 기업과 자국 기업의 경쟁은 불공정 무역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미국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중국산 전기차(25%→100%)와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7.5%→25%)에 부과되는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EU는 다음달 중국산 전기차 등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

중국은 이같은 조치가 전형적인 보호무역주의라며 미국과 EU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상 등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신에너지차를 둘러싼 양측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中 신에너지차에 무역장벽 세우자 현대차그룹 판매량도 '쑥쑥'


현대자동차 로고. 연합뉴스

양측의 물러설 수 없는 격돌 속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곳이 한국 자동차업계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올해 1분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글로벌 판매량은 28만여대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전기차는 대부분 중국에서 판매되는 중국 브랜드를 제외하면 10만 3970대를 팔아 테슬라(25만 5615대), 폭스바겐(14만 7293대), 스텔란티스(13만2천888대)에 이어 글로벌 판매 4위를 차지했다.

하이브리드차도 17만 5979대를 팔아 하이브리드차의 원조인 도요타(69만 3343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20만 2561대), 스즈키(18만 1320대), 혼다(17만 6267대) 등 일본 업체 4곳의 뒤를 이었다.

이에따라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 신에너지차를 대표하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모두에서 글로벌 판매량 '톱5' 안에 든 세계 유일의 완성차 업체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글로벌 신에너지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질주 배경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EU에서의 선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두 시장이 중국 신에너지차 업체들에 높은 무역장벽을 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중국승용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에 수출된 중국산 전기차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는 미국 브랜드 제품이며 실제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자동차는 지리자동차의 폴스타 2217대에 불과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최근 연구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이 중국산 전기차 등에 대한 관세를 20% 인상할 경우 한국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수출은 1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당국 지원이 다가 아니다…기술력으로 무장한 中 신에너지차


신에너지차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EU간 갈등이 이렇게 한국 신에너지차 산업에 이득을 가져다 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넋놓고 즐길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앞서 살펴본대로 중국 신에너지차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소위 당성, 즉 중국 당국의 막대한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의 신에너지차 굴기가 성숙단계에 접어든 현재는 이보다는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보다 핵심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회 2100km 주행이 가능한 비야디의 5세대 DM-i 하이브리드 기술 공개 현장. 웨이보 캡처

비야디가 올해 초 선보인 신형 시걸(Seagull)의 가격은 미화 1만달러(약 1천 300만원)에 불과하다. 당초 저렴한 가격만큼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지만 시걸은 이같은 편견을 보기좋게 깨고 전기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지난 3월 "(시걸의) 예상외의 매출 호조와 비야디의 해외 시장 진출 확대로 미국 디트로이트와 텍사스에서 독일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업계와 정치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여기다 비야디는 지난달 1회 충전과 주유로 최대 2100㎞를 달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출시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했다. 이는 하이브리드 차의 원조이자 고연비의 대명사인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주행거리(1100㎞)를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비야디는 그동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최대 단점으로 꼽혔던 높은 차량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는데 해당 차량의 시작가는 9만 9800위안(약 1895만원)에 불과하다.

비야디 창업자인 왕촨푸 회장이 "전세계에서 팔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4대중 3대가 중국 브랜드"라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중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정상에 올랐다"며 자신감을 드러낼만 하다.

비야디가 다른 완성차 브랜드들이 상상하기도 힘든 가성비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터리부터 완성차까지 모두 생산이 가능한 수직계열화가 자리잡고 있지만 이 역시 자체 기술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다가올 비야디와의 정면승부…현대·기아차는 준비됐나?


지난 4월 열린 베이징 모터쇼는 이런 중국 신에너지차 산업의 약진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였다. 80여개 완성차 업체가 참여한 해당 모터쇼에서 주인공은 단연 비야디를 비롯한 중국 신에너지차 기업들이었다.

벤츠와 BMW, 아우디폭스바겐, 도요다,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참여했지만 대부분 기존 모델 중심으로 부스를 채웠고 몇년째 새 모델이 없는 테슬라는 아예 이번 모터쇼에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와 기아차, 제니시스도 각각 부스를 열어 신에너지차, 특히 고성능·럭셔리차로 중국 시장을 사로잡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이는 바꿔말하면 가성비로는 더이상 중국 신에너지차와 정면승부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베이징 모터쇼에 12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을 파견해 중국 신에너지차의 현주소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다.

베이징 모터쇼에 전시된 샤오미의 첫 전기차 SU7. 임진수 특파원


지금은 미국과 EU가 방패막을 쳐주고 있지만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신에너지차 산업이 그 방패막 조차 무용지물로 만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제패하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지금은 미국내에서조차 '쇠퇴한 제조업'으로 불릴 만큼 몰락한 것처럼 중국산 신에너지차의 역습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도 미국과 같은 경로를 따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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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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