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대구와 경북이 합쳐지는 날
먼저 시작하고 멈춘 부울경…지역 맹주 안주해 기회 날려
여야가 4·10 총선 준비로 어수선하던 올 1월 25일 특별법 하나가 국회를 통과했다. 대구와 광주간 200㎞ 기찻길을 예타 없이 건설하는 달빛철도특별법이다. 30년 이상 묵은 이 지역 숙원 사업이 지난해 8월 헌정 사상 최다(261명) 국회의원 참여로 발의 5개월 만에 전광석화처럼 해결됐다. 21대 국회 처리가 무산되고 22대로 넘어간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는 대조적이다. 대구·경북(TK)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도 이미 완성했다. 달빛철도 개통과 TK신공항의 개항 목표는 모두 2030년이다.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달빛철도로 중부권 영호남을 아우르고 남부권 거점공항을 만들어 인천공항에 버금가는 허브로 키우는 게 이들의 포부다.
TK의 야심을 더 적나라게 드러낸 대목이 바로 행정통합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달 17일 한 지역 일간지 행사에서 전격적으로 대구시와 경상북도 통합을 선언하고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원래 통합론자였기 때문에 홍 시장의 맞장구로 단체장 차원의 합의는 이뤄졌다. 통합지자체의 명칭, 청사 위치 등 예민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두 단체장의 결단만으로 반 이상 성사된 것이나 다름 없다. 올해 안에 시·도의회 의결, 내년 상반기 행정통합법 국회 통과, 2026년 지방선거 통합 단체장 선출 등 시간표도 나왔다. 홍 시장과 이 지사는 4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과 4자 회동한다. 통합 선언 보름 만이다. TK가 부산·경남(PK)을 제치고 한반도 제2 도시로 도약한다는 목표가 꿈만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선 TK가 행정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비수도권 맹주로 발돋움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모습이 하나도 나쁠 게 없다. 어차피 TK는 현 정권의 가장 견고한 텃밭 아닌가. 홍 시장과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케미’를 봐도 통합을 위한 정부 협조는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TK 통합 발표 사흘 뒤 윤 대통령은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하고 약속했다. 광역지자체간 통합은 그동안 전례가 없었다. 경남에서 창원 마산 진해가 합치고, 충북에서 청주와 청원이 합친 정도다. TK 통합이 성사되면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래 첫번째 사례가 된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어젠다인 지방시대 구현에 도움이 된다면 추진 주체가 TK든 PK든 아무 상관이 없다.
행정통합 혹은 행정연합(메가시티) 논의의 스타트는 사실 PK가 끊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대거 배출된 민선 7기에서 특별법까지 만들어 특별연합 형태의 통합이 90% 수준까지 진행됐지만 민선 8기 출범과 동시에 무산됐다. 지금도 부산·경남은 행정통합, 부산·울산·경남은 초광역경제동맹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을 만들고 의제를 발굴하고는 있다. 그러나 박형준 부산시장, 박완수 경남지사, 김두겸 울산시장 중 누구도 통합이나 동맹에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 시장은 과거 부산·울산·경남이 추진한 메가시티를 비판하면서 “부산 울산 경남을 묶으면 수장을 1명만 뽑을 수 있겠나”고 물은 적이 있다. 똑같은 질문이 주어진 홍 시장은 이렇게 답한다. “저야 임기가 2년여 밖에 안 남아있지만 이 지사는 6년이 남았으니까 통합하면 대구·경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번에 TK 통합을 깜짝 발표하면서 경북지사에게 건넨 덕담(?)이다. 설사 홍 시장의 이런 행보가 차기 대권 플랜에 맞춰 짜여진 각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통합단체장이 누가 될 것인가”라는 난제의 물꼬를 튼 건 사실이다.
소멸 위기 지방이 그나마 살 수 있는 길은 인근 지자체와의 통합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때 400만 명 진입을 바라보던 부산 인구가 300만 명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현실만 봐도 그렇다. 상황이 이런데도 통합이나 연합이 안 되는 덴 이유가 있다. 주민이 반대해서도,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도 아니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와 자리에 연연하는 지방정부의 수장들 때문이다. 동네 맹주에 안주하려는 PK 단체장들의 협량이 지역 회생 기회까지 날려버리는 형국이다.
TK 통합이 지금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 2년 뒤 6·3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 선출은 무리가 없다.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을 바라는 이들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TK는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한 과세 인사 교육 민생치안 등 방대한 권한을 갖게 된다. 서울 다음 규모의 자치시도가 탄생하는 것이다. PK는 애써 침착한 척 하지만 이게 진심일 리는 없다. 논의하고 있고 용역을 수행 중이니 지켜봐 달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꼭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나 박완수 경남지사가 대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협의에 앞서 그 질문에 대답이 먼저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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