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매체의 무대와 정의의 극작술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4. 6. 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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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stage)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으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모든 재판이 낱낱이 보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에서 판결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이 기본이며 그 판결로 유지되는 사회의 규범과 정의를 모두가 실감할 수 있어야 법의 권위가 성립된다.

그렇게 법정은 '정의를 행할'뿐 아니라 그것을 '보여주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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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무대(stage)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으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평범한 생활공간이 아닌 보이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장소다. 연주회나 연극, 무용 등은 그 무대에 완벽한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수많은 연습과 리허설을 요한다. 영화도 연기와 연출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반복된 연습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장소에서 분명히 차별된다. 영화는 그 시초부터 우리의 시선을 인공적인 무대로 이끄는 대신 카메라를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평범하고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만들었다.

영화는 무대를 현실로 확장했을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카메라에 포착됨으로써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귀족이나 특별한 모델이 아니면 담기기 어려운 그림과 달리 신문이나 뉴스 같은 매체에 실리는 사진이나 동영상엔 어떤 미담의 주인공이나 작은 콘테스트의 수상자들, 아니면 그저 나들이 나온 평범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지나가다 우연히 찍히는 경우처럼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20세기 초 문화자료들을 보면 엑스트라로 영화에 참여하기 위해 대중이 줄을 섰다는 기록도 있다. 어디든 무대로 만들고 누구나 유명인처럼 느껴지게 하는 매체의 힘은 그 역사의 초기부터 분명히 감지됐다.

무대처럼 명백한 가시성의 장소가 예술분야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권을 가진 인간이라면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야 하는 정치의 장(場)이나 법적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도 일종의 무대다. 특히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는 법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실행되는 무대가 법정이라는 것은 단지 비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재판이 낱낱이 보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에서 판결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이 기본이며 그 판결로 유지되는 사회의 규범과 정의를 모두가 실감할 수 있어야 법의 권위가 성립된다. 그렇게 법정은 '정의를 행할'뿐 아니라 그것을 '보여주는' 무대다.

법적 정의라는 목적과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수단은 자주 혼동되긴 하지만 분명 서로 다른 척도를 갖는다. 그래서 약자의 편에서 가장 정의로운 처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나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이 냉철한 법리를 해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나 가장 실망스러운 반전드라마가 탄생하기도 하는 무대가 바로 법정이다.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을 강하게 비판한 한나 아렌트를 떠올려본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수용소를 관장한 대표적 전범이고 대부분 유대인의 바람대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아렌트는 그에게 내려진 정의의 심판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했음을 아쉬워했다. 그에 대한 불법체포(납치)부터 그가 국제법이 아니라 피해자인 이스라엘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감정에 휩쓸려 실신하곤 한 증인들의 모습이 그 중요한 역사의 순간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정의의 구현을 증명해야 할 법정을 사적인 복수의 장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곳곳에 편재하는 매체는 가히 대중적 감시체계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했다. 대중의 눈을 끝까지 속이거나 완벽한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감시체계는 분명 사회적 안전과 정의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적극적인 대중의 참여가 다수의 영향력으로 변질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의 법감정이나 상식과 어울리는 법리도 중요하지만 법적 정의라는 목적은 올바른 절차라는 정당한 수단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가면 공연은 지속될 수 없다. 관객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법정드라마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또한 그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만드는 기억하는 자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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