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IST 본떠 만든 공업기술硏, 대만 반도체 산실 됐다
대만이 전 세계 인공지능(AI) 인프라 생태계의 패권을 쥐게 된 배경에는 정부연구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이 있다는 평가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비롯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ITRI에서 시작해 분사(spin-off)한 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ITRI가 대만 반도체 기술의 산실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는 ITRI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한국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자극받은 대만 정부가 1973년 설립했다. 1970년대 미국 전자회사 RCA 등에 파견돼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이 ITRI로 복귀했다. 이들이 1977년 대만 최초의 집적회로(IC) 생산라인을 가동했고, 가동 6개월 만에 70%의 수율을 기록했다. RCA의 50% 수율을 뛰어넘은 것이다. 덕분에 대만은 세계 3위 전자시계 수출국에 올랐다. 대만 신주에 있는 ITRI의 현재 연구 인력은 약 6000명. 반면 이들이 설립 때 참고한 한국의 KIST 인력은 절반인 3000여 명에 불과하다.
ITRI는 주요 R&D 성과를 민간에 이전하며 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TSMC를 꼽을 수 있다. ITRI 원장이었던 모리스 창은 당시에 개념조차 없었던 새로운 사업 모델인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정부에 제안했고, 1987년 TSMC를 창업했다. ITRI는 반도체 장비와 기술, 98명의 전문가를 TSMC에 이전했다. 손기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ITRI가 없었다면 모리스 창이 대만에 오지도 TSMC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만 대표 파운드리 기업 UMC 역시 ITRI로부터 R&D 인력과 함께 4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제조 기술을 이전받아 1980년 설립됐다. 다른 파운드리 기업인 TMC와 VIS도 ITRI에서 분사해 각각 1989년, 1994년 설립됐다. 이렇게 탄생한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의뢰할 수 있게 되면서, 대만에는 수많은 반도체 설계 회사가 만들어졌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두 자국 내에서 가능한 완전한 대만 반도체 생태계의 시작에는 ITRI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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