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천안문 기도문 안된다”… 홍콩 종교지 백지 발행
‘’오늘 1면 특집 기사는 사정이 있어 싣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35주기인 6월 4일을 앞둔 지난 2일, 홍콩 주간지 ‘시대논단(Christian Times)’이 첫 페이지 대부분을 허옇게 비운 채 발간했다.
1987년 창간된 시대논단은 매년 천안문 사태 기념일마다 1면에 추모 기도문을 게재해왔지만, 올해는 당국의 압박으로 백지를 발행하게 된 것이다. 사설(社說)에서는 “역사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기도문조차 민감한 사안이 됐다”면서 “언론으로서 역사와 독자를 외면해선 안 된다. 그러나 현재 국면에선 글자들을 빈칸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천안문 사태는 1986년 학생 시위 탄압에 반대했던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기 위해 열렸던 집회가 민주화 요구 시위로까지 확산하면서 빚어졌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일대에서 민주화를 외친 학생과 시민을 군을 동원해 진압, 수천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낳았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언론·집회 자유가 보장되던 홍콩은 그동안 중국에서도 천안문 사태를 공개 추모할 수 있는 유일 지역이었지만, 더는 아니다. 당국이 2020년 천안문 추모 집회를 금지한 데 이어, 현지 언론에도 재갈을 물리며 천안문 사태를 완전한 금기(禁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만 해도 홍콩에선 18만명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해 ‘베이징이 침묵할 때 홍콩은 촛불을 들었다’(뉴욕타임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듬해 홍콩 당국은 코로나 방역을 명분으로 추모 행사를 막았고 2021년엔 행사 주최 측인 지련회가 해산됐다.
작년엔 방역이 해제되자 추모 행사가 열리던 곳에서 대규모 쇼핑 페스티벌을 개최해 막았다. 올해 3월엔 홍콩 자체 국가보안법인 ‘23조법’이 발효되면서 천안문 사태 공개 언급이 더욱 민감한 사안이 됐다.
홍콩 당국은 노골적으로 “집에서 혼자 천안문 사태를 추모하라”는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3일 홍콩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의 의장 레지나 입은 “불만을 조장하고, 선동 의도를 가진 행위는 모두 체제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증오를 부추길 의도 없이 개인적으로 어느 날이든 기념한다면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로니 퉁 행정위원도 천안문 사태 추모에 대한 직접 언급 없이 “집에서 개인적으로 한다면 수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28일 새 보안법(23조법)에 따라 천안문 사태 추모 집회 참여를 독려한 6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체포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이미 해산된 지련회의 부회장을 맡았던 차우항퉁이었다.
홍콩에 앞서 수십년 동안 천안문 사태 언급이 봉쇄된 중국 본토에선 6월 4일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선 안 되는 날’이 됐다. 소셜미디어에서 ‘류쓰(六四)’ ‘5월 35일’ ‘VIIV’ 등 천안문 사태를 우회적으로 가리키는 말은 검색이 안 된다. ‘6월 4일’을 연상시키는 64위안이나, 6.4위안도 송금할 수 없다. ‘16:40′ 회의 소집도 제한된다.
중국 포털 사이트에선 ‘1989년 중대 사건’을 검색하면 ‘베를린 장벽 붕괴’가 나온다. 다른 연도를 검색하면 자국 사건이 우선 노출되는 것과 대조된다. 학자들 논문은 물론이고 외국 서적의 중국어 번역본에도 천안문 사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100m 허들 결승전 직후 두 중국 선수가 포옹하는 사진도 중국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당시 유니폼 속 숫자 ‘6′과 ‘4′가 나란히 붙어 천안문 사태 기념일인 ‘6·4′를 연상시켰다는 이유다.
천안문 사태의 기억을 간직한 이들은 ‘지워지고’ 있다. 민주화 시위 탄압에 반대했던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 35주기 추모 행사는 공식적으로 열리지 않았고, 장시성의 묘역에서 가족들만 모였다. 70대 중국공산당 퇴직 간부의 후야오방 추모 글도 삭제됐다. 미국의 소리(VOA) 등 외신들은 천안문 사태 35주기를 맞아 희생자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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