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스크 피하라”… 구글도 애플도 MS도 모두 동남아에 꽂혔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격전에 돌입했다. 지난달 1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 인프라 건설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17억달러(약 2조3400억원), 말레이시아에 22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약 한 달 후 구글은 말레이시아에 첫 번째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시설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액은 20억달러. 구글의 동남아시아 국가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다.
그간 미국·유럽 중심 선진 시장과 중국을 집중 공략해 온 글로벌 빅테크가 동남아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 쟁탈전에 나선 것이다. 인도를 제외하고도 동남아 지역은 약 6억5000만 인구를 갖고 있는 데다가 평균연령이 낮아 투자 매력이 높은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시아 입장에선 AI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은 시장을 더 확장하려는 빅테크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데이터센터 허브로 뜬다
빅테크가 가장 먼저 동남아에서 치열하게 맞붙는 분야는 데이터센터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을 잇따라 방문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쏟아냈다. 나델라 CEO는 자카르타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이번 투자는 AI 시대에서 인도네시아가 번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S는 2025년까지 동남아에서 250만명에게 AI 사용법을 교육한다는 계획이다. 미래 ‘AI 소비력’을 더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일찌감치 동남아 지역에 먼저 진출한 아마존웹서비스(AWS)도 MS와 구글의 잇단 진출에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놨다. 아마존은 지난달 초 2028년까지 약 90억달러를 싱가포르 데이터센터 확장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AWS는 “2010년 싱가포르에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본부를 설립한 이후 13년간 누적 투자 금액의 두 배 넘는 금액”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에 가까운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 지역은 데이터센터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토지, 물, 전기 등 인프라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현재 데이터센터가 총 13곳 운영되고 있고 추가로 4곳이 건설 중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말 이 지역에 43억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파크를 짓는다고 밝혔다.
과거 동남아시아는 기술 부족을 이유로 빅테크의 외면을 받았다. 최근 빅테크가 동남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최근 이 지역에서 클라우드 기반 AI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수요가 성숙기에 접어든 미국·유럽 등과 달리 동남아는 이제 막 개화해 잠재 수요가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6억5000만이 넘는 인구가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 아마존, MS 같은 대기업이 경쟁하고 있다”며 “테크 시장으로서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이나 리스크를 피하라
동남아시아 시장이 중국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곳에 AI 관련 투자가 몰리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되자 미국 기업인 빅테크들의 중국 진출이 힘들어졌다. 미·중 갈등 이전에 아마존과 MS는 중국에 데이터센터를 각각 6곳, 3곳씩 운영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 제재 이후로는 AI 인프라를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빅테크 입장에선 중국을 대체할 신시장이 필요한 셈이다.
동남아 소비자들이 최근 AI를 비롯한 최신 IT 기술을 적극 소비하는 것도 빅테크엔 매력적이다. 애플이 말레이시아에 첫 애플스토어를 여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결국 AI 인프라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빅테크들이 동남아에 대거 진출하면서 이미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었던 중국 기술 기업과도 맞붙게 됐다. 알리바바, 화웨이와 텐센트는 향후 몇 년에 걸쳐 동남아에 수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경기 침체와 엄격한 규제 때문에 동남아로 시장을 확장한 중국 기술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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