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리듬의 모차르트는 ‘밀당’의 귀재
피아니스트 조재혁
마술사 이은결은 그가 연주하는 쇼팽 전주곡 ‘빗방울’에 맞춰서 환상의 세계를 펼치고, 발레리나 김주원은 그의 피아노 현대 곡에 따라서 춤춘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전 성신여대 교수는 발레나 마술과도 스스럼없이 무대에서 어울리는 한국 음악계의 ‘아이디어 뱅크’다. 그는 “발레리나와 마술사에게 시각과 장면이 중요하다면 연주자들의 사고 방식은 청각과 음악 중심”이라며 “과학과 인문학도 융합이 화두이듯이 클래식 음악도 다른 장르나 매체와 얼마든지 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제 믿음”이라고 했다.
조재혁의 음악 실험은 장르 간 협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본업인 피아노는 물론, 파이프 오르간과 피아노의 전신에 해당하는 하프시코드까지 못 다루는 건반 악기가 없는 ‘만능 연주자’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그는 만 5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예고 1학년 때 도미(渡美)했다. 오르간은 미국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 시절에 부전공으로 택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 집에 있는 탁상시계부터 라디오와 냉장고까지 모두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야만 직성이 풀렸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오르간은 “굳게 잠긴 문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근사한 비밀 기계 장치 같았다”고 했다. 실제로 미 뉴저지의 교회 연주자로 활동할 적에는 고장 난 오르간을 현장에서 수리한 적도 있다.
하프시코드는 줄리아드 음대 재학 시절 수업 시간에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0석에 이르는 공연장에서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현대식 피아노가 힘찬 붓질 같다면, 강약 조절은 힘들지만 해맑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는 점묘법(點描法)과 닮았다”고 비유했다. 같은 건반 악기라도 제각각 고유한 소리와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피아노로 바흐의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 어색하거나 막히던 지점들도 옛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면 해답이 나올 적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 ‘장르 파괴’ ‘영역 파괴’의 재주꾼이 이번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18곡)에 도전한다. 7월 6일 두 차례와 11월 1~2일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이 연주회를 마친 뒤에는 전곡 음반도 녹음할 예정이다. 그는 “모차르트는 기악곡에서도 오페라 아리아 같은 화려함과 서정성을 느낄 수 있고 자유로운 리듬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천부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의 작곡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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