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타고 음원차트 돌풍… ‘밈 음악’ 전성시대
인플루언서 출신 가수들이 선보인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음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셜미디어 인기를 발판 삼아 전문 가요기획사를 통하지 않고도 주류 음원 차트와 공중파 음악 방송, 대형 공연 무대로 진출하는 사례 또한 이어지고 있다.
“오조사마(お嬢様·아가씨), it’s time to go to bed~”. 지난달 14일 SBS 음악방송 ‘더 쇼’에선 집사 복장의 두 남자가 방청석 환호성을 한 몸에 받았다. ‘사이고노 게이코쿠데스(最後の警告です·마지막 경고입니다)’ ‘야레야레(やれやれ)’ 등 일본어 가사 떼창도 이어졌다. 주인공은 유튜버 닛몰캐쉬와 코미디언 김경욱의 가상 캐릭터 다나카상이 결성한 듀오 ‘ASMRZ’. 이들이 지난 2월 일본의 집사 카페 문화를 패러디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끈 노래 ‘잘 자요 아가씨’가 공중파 음악 방송까지 진출한 것이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가요 차트에서 이 노래 최고 순위는 845위(3일 기준)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820만 뷰를 넘겼다.
유튜버 김계란이 제작자로 나선 걸 밴드 QWER은 지난 4월 신곡 ‘고민중독’으로 멜론 톱100 차트 4위를 기록했다. 그룹명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에서 자주 쓰는 키보드 단축키에서 따온 것이다. 크리에이터 쵸단과 마젠타, 410만 팔로어를 가진 틱톡커 히나, 일본 아이돌 NMB48 출신 시연이 멤버로, 카카오엔터 산하지만 음악이 아닌 MCN(인플루언서 기획사) 전문 계열사 쓰리와이코프레이션 소속이다. 데뷔도 웹 예능으로 했지만, 정통 걸 밴드 음악을 지향하며 호평받았다. 8월 대형 음악 축제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도 선다. 국내 최대 록 페스티벌로 정통 실력파 밴드들이 단골로 섭외되는 이 무대에 소셜미디어 인기로 출발한 밴드가 서는 건 이례적이다.
◇가요계 판도 바꾼 ‘보는 음악 전성시대’
구독자 인기를 발판 삼아 늘기 시작한 인플루언서의 음원 출시는 그간 이벤트성 비주류 음악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음원 소비 방식이 바뀌면서 ‘보는 음악 전성시대’가 판도를 바꿨다는 평이 나온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숫자에서 유튜브 뮤직(720만명)이 멜론(697만명)을 앞질렀다. 2021년 4월 유튜브 뮤직이 344만명, 멜론이 852만명이던 격차가 3년 만에 역전됐다.
과거보다 음원의 제작·유통이 쉬워지고, 비용이 준 점도 인플루언서들의 가요계 진입 장벽을 낮췄다. 스트리머 우왁굳이 제작해 가상 아이돌 열풍을 이끌며 단독 공연까지 개최한 6인조 그룹 ‘이세계 아이돌’은 데뷔 초부터 온라인 공모전으로 팬들이 쓴 곡을 받아 활동했다. ASMRZ의 ‘잘 자요 아가씨’도 유튜버 과나(작사·작곡·프로듀싱), 틱톡 중심으로 인기를 끈 듀오 이짜나 언짜나(안무) 등 인플루언서들이 모여 만든 곡이다.
이문원 평론가는 “전 연령대가 아는 메가 히트곡이 점점 사라지면서 특정 취향을 저격한 음악이 더 효과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로 인기를 끈 가수들이 국내 J팝 열풍을 이끌고 있는 게 대표적”이라며 “수십만 구독자를 고정 팬으로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이 웬만한 중소 기획사 가수보다 음원 데뷔 출발선에서 유리해졌다”고 했다.
이들의 ‘밈 음악’ 인기가 소셜미디어 사용 유무로 음악 소비층 세대 격차를 더욱 벌릴 거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멜론 차트 최고 순위는 588위지만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선 오디오 영상 순위 1위에 오른 노래 ‘마라탕후루’(가수 서이브)가 대표적이다. 음악 방송이나 공연 활동이 전무한데 이미 많은 10대가 즐겨 부르며 노래방 정식 등록곡이 됐다.
정통 음악 장르에선 인플루언서 음악의 커진 영향력을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튜브 개그팀 뷰티풀 너드(최제우, 전경민)가 부캐로 연기한 힙합 그룹 맨스티어(Men’s Tear)는 최근 pH-1, 스카이민혁, KOR KASH 등 한국 기성 래퍼들과 서로를 랩 가사로 비판하는 디스전을 펼치기도 했다. 맨스티어의 최신곡 ‘AK47′이 유튜브 조회 수 1000만을 넘기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직업 래퍼를 풍자한 가사 수준이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방송계도 팬데믹 이후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유튜브와 기성 방송국 콘텐츠 시청 세대가 갈라졌고, 서로 모방하고 경쟁하는 과정이 이어졌다”며 “대중가요계도 비슷한 현상이 옮아붙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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