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불륜 의원의 사퇴
지난 4월 말 일본에선 “기억에 있습니다”라는 정치인의 발언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렀다. 지난 4월 24일, 일본 4선 국회의원인 미야자와 히로유키(宮澤博行·49) 중의원 의원이 불륜 의혹을 묻는 기자들에게 “사죄드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한 잘못을 기억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는 다음 날 불륜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유부남인 미야자와씨는 3년 전 성매매 업소의 28세 여성과 한 달간 동거하는 불륜을 저질렀다. 동거 말고도 당시 또 다른 여성을 유혹하려고 스마트폰 이성 소개 앱에 등록한 사실도 알려졌다. 불륜 의혹을 포착한 일본 주간지 기자가 기차역에서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인정했다. 주간지 발매일을 하루 앞둔 이날, 보좌진에게도 알리지 않고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원직을 사퇴한 3일 뒤엔 지역구에서 사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의원도 그만둔 마당에 왜 기자회견을 하나’라는 질문엔 “불상사를 일으켜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이렇게 나와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선출직에서 물러나는 만큼, 표를 준 지역민에게 사죄하고 사퇴 이유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파렴치한으로 매도돼 마땅한 미야자와씨인데도 ‘기억에 있습니다’라는 발언에 대해선 긍정론이 많았다. 정치인들이 본인에게 불리한 사건엔 예외 없이 “기억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줄곧 봐왔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기억에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을 정도다. 일본 소셜미디어에선 “정치인이 ‘기억에 있다’고 말하는 건 처음 본다” “솔직한 태도만큼은 높게 평가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산케이신문은 “불륜 등 부정행위가 발각된 국회의원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의원직을 사퇴한 사례는 거의 없어 미야자와 전 의원의 끝맺음은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불륜은 법률로만 보면 범죄는 아니다. 윤리 문제를 일으킨 미야자와씨는 어떤 이유로든 두둔받을 수 없다. 동거·불륜이라고 하지만, 실은 돈을 주고 상습적인 매춘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나 마땅하다.
씁쓸한 대목은 파렴치한 미야자와씨에게 호의적인 일본 여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만 봐도 그렇다. 법률을 어긴 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죄 판결을 받아도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정치 탄압이라고 소리 높이는 정치인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륜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도 적지 않았지만 기자들 앞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힌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도 일본 못지않게 “기억에 없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자주 들어왔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나 마땅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 그런 상식은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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