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34] 장식을 뺀 간결한 의자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6. 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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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MR 사이드 체어, 1927년, 크롬 도금 강철과 가죽, 77.4 x 57.1 x 85.1 cm,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독일 출신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가 디자인한 의자다. 직선과 날아갈 듯 매끄러운 곡선이 연결된 강철 튜브 하나로 딱 한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간결한데, 공중에 뜬 채 체중을 지탱하는 우아한 캔틸레버 구조의 역학이 놀랍다.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예술이다.

미스는 20세기 초, 독일 산업의 근대화를 이끈 건축과 디자인의 선구자 페터 베렌스 아래서 건축가로 훈련받았다. 1930년 기술과 예술의 통합을 추구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됐으나, 1933년 나치 정권의 박해를 못 이겨 바우하우스를 폐교한 뒤 미국으로 이민해 대학 교수가 됐다. 20세기 미국은 바우하우스의 이상을 단기간에 대량으로 실현할 기회의 땅이었다. 미스는 발터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현대 대도시 마천루의 표준이 된 ‘국제주의 양식’을 선도했다. 유리와 강철로 직조한 직사각형이 무한 반복되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고층 건물, 오늘날에도 세계적 대기업의 본사가 대부분 따르고 있는 건축 양식이 바로 ‘국제주의’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그 외양에는 본질과 무관한 장식을 배제하고, 형태와 재료가 모두 기능에 충실한, 합리적이고도 실용주의적인 사고가 깃들어 있다. 미스는 ‘빼는 게 더하는 것(Less is more)’이라는 유명한 말로 자기의 이러한 미학을 잘 요약했다.

미스의 건물은 꿈도 못 꾸겠지만, 의자는 적금이라도 부으면 언젠가 하나쯤은 가져볼 수 있다. 어차피 ‘빼는 게 더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큰 건물보다는 작은 의자가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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