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내는 ‘딸깍’ 소리는 알파벳”…동물과 대화, 진짜 가능해지나
AI로 분석해 300개 패턴 확인
고래들 시각보다 청각 더 발달
템포·리듬·장단음 달리해 소통
새끼고래는 아기처럼 ‘옹알이’
AI분석 데이터 머신러닝 실시
향유고래와 의사소통 기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고래의 소리의 신비함도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AI 연구소는 국제 향유고래 언어 연구단체 프로젝트(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CETI)와 함께 국제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향유고래가 음성 알파벳을 갖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향유고래는 가장 큰 두뇌를 가진 동물로, 몸길이가 최대 24m까지 자라고 몸무게도 74t에 이르는 대형 고래다. 과거 배 속에 쌓인 물질로 용연향이란 고가의 향료를 만들 수 있어 남획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향유고래는 선박과 충돌하거나 그물에 걸리는 일도 많아 멸종 위기로 내몰리기도 했다.
지적 외계인 탐색 프로젝트인 SETI의 이름을 모방한 CETI는 데이비드 그루버 뉴욕시립대 교수가 자선단체로부터 3300만달러를 기부받아 만든 프로젝트로 고래의 소리 해독을 목표로 한다. 셰인 게로 캐나다 칼턴대 교수가 이끄는 CETI 연구진은 2014~2018년 카리브해에서 향유고래가 내는 딸깍 소리를 녹음했다. 동카브리해에는 400여 마리로 구성된 향유고래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60마리에 수중 마이크를 부착해 녹음 파일 8719건을 확보했다.
제이컵 앤드리아 MIT 컴퓨터사이언스 교수팀은 이 녹음 파일을 AI로 분석해 패턴을 도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인간 언어처럼 음운을 조합해 단어를 만들었다. 향유고래는 ‘딸깍, 딸깍’ 끊기는 독특한 모스부호와 같은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지속 시간, 템포와 리듬을 바꾸고 클릭 수를 다르게 하면서 소통했다.
향유고래는 한 번에 3~40번 클릭 소리를 냈는데 연구진은 향유고래가 내는 소리를 21가지로 구분하고 이를 코다(coda)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1+1+3’ 코다는 딸깍, 딸깍 두 번 소리를 내고 잠시 멈춘 다음 세 번 연속으로 딸깍 소리를 내는 식이다.
연구진은 코다가 고래의 언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이라고 분석했다. 향유고래의 소리를 분석한 결과, 코다는 21가지밖에 없지만, 리듬과 박자를 바꾸거나 장식음을 붙이는 방식으로 300가지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향유고래는 다른 향유고래를 만났을 때 코다 앞뒤로 장식음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장식음을 붙여 소리를 냈다. 연구진은 장식음이 듣는 고래가 말할 차례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접미사와 유사한 역할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아직 향유고래 음성 알파벳의 명확한 의미는 밝히지 못했지만, 앞으로 AI를 활용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AI 분석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다시 AI에 머신러닝시키면서 의미를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진은 딸깍 소리로 만든 기본음을 조합해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향유고래와 의사소통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앤드리아 교수는 “향유고래가 클릭 소리를 개별 모음이나 자음으로 쓰는지, 그게 문장 자체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아직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AI 연구가 발전하면 인간과 고래가 번역기를 두고 대화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물론 코다에 대한 과대 해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향유고래 무리마다 다른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루크 렌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음을 정교하게 조합한다고 반드시 인간의 언어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며 “고래들이 노래하면서 서로 기본음의 박자를 맞추는 것은 대화하기보다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간과 달리 고래의 주 감각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이다. 빛은 고래가 내려가는 해수면 200m 아래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반면 소리는 공중에서보다 물속에서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이에 맞춰 고래의 소리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고래의 소리는 바다를 가로질러 아주 멀리까지 전달된다. 고래는 소리를 활용해 반향을 탐지하고 물속 지형도 상세하게 파악해 낸다.
고래는 5000만년에 걸쳐 다양하고 복잡한 소리를 내고 들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고래는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탐색하고, 짝과 먹이를 찾고, 영역과 자원을 지키고, 포식자를 피한다. 새끼 고래는 인간의 아기처럼 옹알이를 하며, 일부는 개체를 부르는 이름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래가 넓은 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경우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방언을 사용한다. 다른 집단의 방언을 흉내내거나 인간의 언어를 흉내내는 듯한 고래의 사례도 있다고 알려졌다.
혹등고래, 참고래, 대왕고래 등의 수염고래는 독특하게 진화된 후두를 통해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12~25㎐의 초저주파를 낸다. 소리는 종에 따라 구별된다. 혹등고래의 울음소리는 높낮이가 있고, 이빨고래는 새가 지저귀는 것과 유사한 소리를 내며, 긴수염고래는 베이스 기타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낸다.
혹등고래의 소리는 동물 소리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혹등고래 노래 중 최초로 녹음된 자료는 1952년 미 해군 엔지니어 프랭크 와틀링턴이 녹음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해양 생물학자 로저 페인은 혹등고래의 소리가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규명해냈다. 이로 인해 고래의 소리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고, 이후 연구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SETI·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알래스카 고래 재단 공동 연구팀은 최근 수중 스피커를 활용해 혹등고래와 2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알래스카 남동부에 있는 한 혹등고래 먹이장에서 수중 스피커로 녹음해 둔 소리를 틀자 ‘트웨인’이라는 이름의 한 혹등고래가 접근했고 서로 20분 동안 소리를 주고받으며 대화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브렌다 매코완 캘리포니아대 박사는 “‘혹등 언어’로 인간과 혹등고래가 의사소통한 첫 번째 사례”라며 “현재 트웨인의 말을 추측하기로는 ‘너 물에 안 들어오고 뭐하는 거야’ ‘범고래 조심해’로 예상되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대화’라고 할 수 있는 3단계 상호작용(1단계 참여, 2단계 동요, 3단계 이탈)을 확인했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트웨인은 정확하게 보트에서 나오는 소리에 반응해 대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래스카 고래 재단의 프레드 샤프 박사는 “혹등고래는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물거품을 그물처럼 활용해 물고기를 잡고, 노래와 사교적인 방문을 하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라며 “트웨인의 이 같은 행동이 대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소통이 대화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트웨인이 다른 혹등고래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외톨이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200m 이내에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보트로 다가와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밝혔다.
SETI·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알래스카 고래 재단 공동 연구팀은 향후 수중으로 보내는 신호의 종류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매코완 박사는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신호를 분류하고 그 맥락을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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