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한국이 원하는 미중 관계, 명확한 원칙 제시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4. 6. 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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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 뒤엔 美中 경쟁의 그림자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속 韓 입지 약화 우려
美中, 서로에 대한 전략 놓고 확신 못 가져
우리가 원칙 세우고 협력 땐 비판-훈수 가능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주 4년 만에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지형을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기에 두 진영을 가로지르는 3국 정상의 만남은 큰 의미를 가진다. 경제, 기후, 보건, 기술 등 기능적 협력에 집중했지만 향후 안보 및 국제질서 등 전략적 비전을 둘러싼 협력도 추진해야 한다.

한중일 정상회의 배후에 미중 전략경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일 양국의 전략적 선택이 미중 경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이기에 3국 모두 전략적 이슈를 논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차하는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의 국익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묘수는 없는가. 시작은 미중 전략경쟁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은 모두 하락세다. 지구적 리더십을 행사할 능력과 국민적 합의 모두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이다. 5% 경제성장률을 지키기에 급급한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국력의 정점을 치고 쇠퇴할 일만 남았다는 소위 중국정점론(peak China)을 두고 세계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양국 모두 하락의 기울기 각도를 놓고 고심 중이며, 반등을 이룰 계기를 찾는 데 급급하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이 서로에 대한 전략을 놓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조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전략으로 위험감축(de-risking) 개념이 나온 지 1년이 되었다. 그나마 용어는 유럽연합에서 수입한 것이다. 인도태평양의 개념을 일본에서 수입한 데 이은 조치다. 해마다 최고액을 경신하는 미중 간 무역량과,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기업들을 보면 미중 간 경제적 관계 단절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미국 주도 지구화와 깊은 상호의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과거의 경험, 특히 냉전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냉전기 미소 무역량은 미국 전체 무역액의 1%에 머물렀다. 미국이 압도적인 대중 군사우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변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의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일반 무역을 유지하면서도 핵심 기술 분야 탈동조화(decoupling)를 유지하는 것이 위험 감축 전략의 핵심이다.

그러나 협력과 견제를 병행한다는 것이 실제로 지속 가능할지, 어떠한 최종 목표를 두고 얼마 동안 이러한 전략을 유지해야 할지 미국으로서도 확신할 수 없다. 경쟁국을 목표로 역사상 초유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며 국내적 합의도 부재하다. 다만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향후 10년이 결정적 10년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는 대략의 그림만 있을 뿐이다. 가까운 동맹국인 한국에 대중 전략의 설계를 놓고 제언을 청하는 일도 이제 낯설지 않다.

중국의 대미 전략은 더욱 모호하다. 중국이 미국 패권을 대체할 장기 플랜을 가지고 있는가의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중국의 국력 강화를 위한 청사진도 명확하지 않다. 시진핑 주석은 대미 전략의 3대 원칙으로 평화공존, 상호존중, 윈윈협력 등을 표방하면서 미국이 제시하는 경쟁의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내심 신생산력과 같은 경쟁의 발판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외교전략에서 러시아와 전략적 유대를 강화하면서도 주권 존중의 원칙을 외교의 핵심으로 삼고 있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기도 어렵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목표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북-중 관계가 탄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북한은 회의 중 정찰위성을 쏘아올려 중국의 입지를 난처하게 했을 뿐 아니라, 5월 2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중일 회의를 비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뿐 아니라 중국이 제시한 용어인 “역내 평화와 안정 유지” 목표도 우롱이며 기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미중 양국의 전략이 정교하게 정비된 것이라고 가정하기 쉽다. 강대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체제와 문명권이 다른 양국은 서로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 과거의 경험을 미래에 투사하는 경향도 강하다. 전형적인 강대국 지정학이 판세를 좌우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원하는 미중 관계, 동아시아 질서의 원칙은 전쟁 방지와 군사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미중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경제, 사회, 문화 교류 증대다. 또한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과 글로벌 사우스의 의견 존중 및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 발전, 기후 변화, 신기술 등 새로운 영역의 규범 창출도 중요하다.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에 임한다면 강대국에 대한 조리 있는 비판과 훈수도 언제든 할 수 있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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