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AI발 전력난에 대비해야
전력망 구축에 첨단산업 성패 달려
선진국들 원전 확대 ‘에너지 전쟁’
야당, 이념 덧씌워 반대해선 안 돼
올 초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의 화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한 전력 확충이었다. AI가 혁명적으로 바꿀 미래 세상의 모습과 예상되는 과제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에너지 부족’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발전이 포럼의 주요 쟁점이 된 건 54년 만에 처음이다. 한때 원전을 국가 에너지 리스트에서 지웠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원전 확대 선언을 했다.
지난달 3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이 공개됐다. 2038년까지 대형 원전 3기를 건설하고, 2035년부터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포함된 건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원전·태양광·풍력 등의 확대로 ‘무탄소 전기’ 비중을 지난해 39.1%에서 2038년 70.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조성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 추가 건설 외에는 답을 찾기 어렵다.
문제는 ‘탈(脫)원전’을 지지하는 야당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다. 이들은 원전 확대에 너무 치중됐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에너지전환 시대를 맞이해 재생에너지 정책에서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며 “전기본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공식 요구했다. AI발 전력 폭증에 대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선진국 상황과 너무 대비되지 않나.
문재인정부 5년은 원전 암흑기였다. 문 전 대통령이 원전 사고 가능성을 부풀리며 탈원전을 강행한 탓에 세계 최고 수준이던 원전 산업은 고사 위기로 내몰렸다. 원전 관련 업체들은 ‘수주 보릿고개’ 여파로 부실해졌고 우수 인력들은 대거 이탈했다. 그 결과 전기료 폭탄이 경제를 덮쳤고, 한전 누적 적자는 커졌다. 에너지·환경 분야에 이념을 덧씌우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이런 ‘정치 리스크’가 더는 없어야 한다.
늘어나는 사용후핵연료도 걱정거리다.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4만4692t에 이르고 2030년부터 차례로 포화상태가 된다. 정부는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에 실패했고 ‘여소야대’ 국면이 더 심해진 22대 국회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야당은 원전을 정쟁거리로 삼지 말고 대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원전 생태계 복원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실현은 물론 K원전 수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원전이 신설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통상 신규 원전 건설은 부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과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로 진통을 겪는다. 원전 건설까지는 대략 14년이 걸린다. 올해부터 서둘러야 2038년 가동을 기대할 수 있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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