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원형과 변형

2024. 6. 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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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원형 유지 원칙 불구
원형이 무엇인지 정의 어렵고
사용자 필요 맞춰 계속 진화해
시대적 변화 수용 자세 보여야

5월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새로운 이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용어에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의 속성은 물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감정과 정체성이 녹아 있다. 그동안 우리가 사용했던 문화재라는 말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문화재라는 말은 전후 일본에서 만든 법률 용어이기 때문이다. 1949년 일본 참의원에서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분카자이(文化財)’란 말을 새로 만들었고 1961년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문화재보호법을 모범으로 한국의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했다. 남의 나라 법을 베끼다시피 하다 보니 법의 체계는 물론 그들이 새로 만든 용어까지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되었다. 문화유산은 한 나라의 정체성에 직결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의아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1890년, 순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유득공은 서울의 고사를 소개한 책 한경지략(漢京識略)을 쓰고 당 시대 이전의 유적을 고적(古蹟)이라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재란 말을 폐기한 것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국가’란 말에서 어딘지 모르게 국수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살짝 묻어난다. 1972년 제정되었고 1988년 우리나라가 가입한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은 문화 혹은 자연유산은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 자연, 무형 유산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의 이름에 ‘국가’라는 접두어가 부적절해 보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얼마 전 국가유산청장이 요즘 유행하는 국적 불명의 한복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 주변은 물론 북촌과 서촌을 걷다 보면 한복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한복 대여점들이 성업 중이다. 입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입은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저런 한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도 있다. 한복을 좀 아는 기성세대의 시각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염려스러울 수도 있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듯이 옷, 음식, 집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다. 한복, 한식, 한옥이라 각각 이름 붙은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요즘 한복 입기 풍조에 대한 우려의 근원일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한복만 가지고 원형을 따지며 공권력을 동원하려 벼르는 것일까.

요즘 한옥, 범위를 좁혀 서울 북촌 한옥을 한번 따져보자. 북촌 한옥은 한국전쟁 이후 지어진 집이다. 한옥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한옥과 구분해 북촌 한옥을 ‘도시형 한옥’이라 부른다. 당시에는 요즘같이 아파트라는 개념이 없었고 한식 목수는 많았으니, 건설업자들은 한식 목수를 동원해 ‘도시형 한옥’을 지어 분양했다. 작게는 스무 평에서 넓어야 마흔 평 정도 되는 땅에 ‘디귿 자’나 ‘미음 자’ 모양으로 집을 배치하고 가운데 작은 마당을 두었다. 조선시대 한옥이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변형된 것이다.

우리 생활양식이 전통적인 좌식에서 의자와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으로 바뀜에 따라 북촌 한옥도 점차 양옥으로 바뀌게 된다. 1990년대 말까지 북촌 한옥 수는 계속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민간의 한옥 보존 운동과 서울시의 한옥 보존 정책이 효과를 거두어 한옥의 가치를 주민들이 인식하면서 북촌 한옥은 소멸 위기를 벗어난다. 낡은 한옥을 고치는 집이 늘어나고 새로 한옥을 짓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런데 21세기 북촌 한옥은 더 이상 20세기 중반의 ‘도시형 한옥’이 아니다. 한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었던 북촌 한옥은 카페나 소품 가게 같은 아기자기한 가게로 바뀐다. 용도가 바뀌면 거기에 걸맞게 공간구성도 바뀌는 법이다. 마당과 대청마루가 없어지거나 변형되는 것은 물론 집의 외관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북촌 한옥이 이렇게 원형을 잃고 변형되어 가는데도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다는 분위기다. 한복을 변형해 입는 것이나 한옥을 변형해 사용하는 것이나 우리 것이, 우리 문화가 변형되는 측면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각자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한복, 한식, 한옥 개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생각일 뿐이다. 중부 아메리카가 원산인 고추가 17세기 초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래하기 전 우리 김치는 고춧가루가 없는 백김치였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고춧가루로 양념한 김치를 16세기 조선 사람이 보면 무엇이라 할까.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 후 청나라에 잡혀 있다가 돌아올 때 입고 온 마고자는 당시로서는 한복이 아니라 만주 옷이었다. 경복궁 집옥재나 창덕궁 연경당 선향재는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은 당시 사람들 눈에는 중국집이었다. 지금 우리 것이라고 여기는 것 대부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화를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그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도 원형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오랜 기간 사용자의 필요에 맞추어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유산조차 원형을 따질 때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일상으로 입고, 먹고, 사는 그 자체인 한복, 한식, 한옥이야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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