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올스타전 수놓았던 덩크 머신, 워렌 로즈그린

이재승 2024. 6. 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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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로즈그린은 프로 초창기에 프로농구 코트를 수놓았다. 두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호쾌한 슬램덩크로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그의 덩크는 당시 많은 관중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대학 시절
플로리다주 출신인 로즈그린은 농구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전도유망한 선수까지는 아니었다. 그의 소속 팀인 채피대학교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
 

좀 더 큰 무대를 원했던 로즈그린은 UNLV에서 3학년과 4학년을 보냈다. 3학년이던 지난 1995~1996시즌에는 26경기에 나섰다. 팀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코트를 꾸준히 밟았다. 경기당 31.8분을 소화했고, 평균 11.5점(야투 성공률 : 54.2%, 자유투 성공률 : 49.4%) 9.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NCAA 1부에 첫 선을 보였음에도, 제공권 싸움을 기대 이상으로 했다. 빅웨스트컨퍼런스 시즌 평균 리바운드 1위에 올랐다. 스틸과 블록슛까지 곁들인 로즈그린은 수비 승리 기여도 1.7로 컨퍼런스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첫 시즌 기록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추후 기대를 모을 만했다.
 

그러나 공격이 문제였다. 나쁘지 않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으나, 슛 거리가 짧은 것이 화근이었다. 신체 조건을 고려했을 때, 외곽슛이나 일정 수준의 패스 센스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로즈그린은 이를 갖추지 못했다. 주로 파워포워드로 기용됐고, 승부처에도 코트를 지키기 어려웠다. 부정확한 자유투 때문이었다.
 

게다가 4학년인 1996~1997시즌에 주춤했다. 졸업반이었기에 좀 더 도약해야 했으나, 32경기에서 평균 27.1분 동안 7.7점(필드골 성공률 : 51.1%, 3점슛 성공률 : 00.0%, 자유투 성공률 : 50.9%) 8.1리바운드에 머물렀다. NBA는 물론, 하부리그에 진입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광주에서
미국에서 자리 잡지 못했던 로즈그린은 1998년에 열린 KBL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 나섰다. 

 

독보적인 운동능력과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했던 로즈그린은 트라이아웃에서 단연 돋보였다. 당시 언더사이즈 빅맨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로즈그린이 지니는 가치는 여러모로 컸다. 그래서 로즈그린은 1라운드에서 나산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1997~1998시즌을 수놓았던 조니 맥도웰(당시 대전 현대)의 대항마로 손꼽혔다. 운동 능력과 위치 선점 능력을 기반으로 한 리바운드 덕분이었다. 또, 로즈그린은 첫 시즌부터 팀 공격을 주도했다. 점프를 기반으로 한 덩크가 가장 돋보였다.
 

로즈그린은 그렇게 나산과 자신의 이름을 동시에 알렸다. 1999년 3월 7일 열린 현대와의 경기에서 KBL 입성 후 최다인 39점을 퍼부었다. 이날만큼은 맥도웰 부럽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로즈그린이 팀을 이끌기에는 부족했다. 투박한 스텝과 뻣뻣한 피벗으로, 1대1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복이 심했다. 언더사이즈 빅맨이라고 해도, 너무 작은 키가 로즈그린의 한계가 도드라졌다.
 

그렇지만 그는 1999년에 열린 KBL 올스타전에서 펄펄 날았다. 특히, 올스타 경기 중에 열린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좌중을 놀라게 했다. 슬램덩크 컨테스트 우승으로 올스타전 MVP까지 수상했다.

인천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즈그린은 한계를 노출했다. 그렇지만 로즈그린은 이듬해에도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 나섰다. 원주 삼보(현 원주 DB)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삼보는 시즌 직전에 신세기와 외국 선수를 교환했다. 신세기는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로즈그린을 1999~2000시즌 외국 선수 조합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주포인 윌리엄스가 포진했고, 로즈그린이 윌리엄스와 중첨됐다. 

 

신세기의 높이가 좋지 않아, 로즈그린의 약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서장훈과 재키 존스(이상 청주 SK), 로렌조 홀(대전 현대) 등 장신 선수들이 신세기의 상대일 때, 로즈그린은 더 고전했다. 

 

신세기는 결국 15승 30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로즈그린은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즈그린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2000년에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MVP로 거듭났기 때문. KBL 역대 최초로 올스타 MVP 2연패.(김선형이 2013~2014시즌부터 3시즌 연속 올스타 MVP를 차지했다) 축제의 장에서 중심으로 우뚝 섰다.

한국을 떠난 후
한국을 떠난 로즈그린은 2002년에 열렸던 필리핀리그 컵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농구공을 내려놓았다. 2009년에 열린 모교 동문회 경기에서 나타났다. 은퇴한 지 제법 됐음에도, 2개의 덩크를 곁들이는 등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모교 홈 코트인 토마스&맥 센터에서 14점을 기록했다. 

 

로즈그린은 경기 종료 후 “주간 3~4회 정도 연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경기력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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