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되다 만 민주주의, 되다 만 연금개혁
우리 사회에서 연금개혁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조정까지 포함하면 1998년, 2007년, 2014년 개혁 등 수차례이다. 이에 더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올해 연금개혁 시도가 있었다.
지난 연금개혁들과 비교할 때 2024년 개혁 시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시민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공론화 과정이다. 과거 연금개혁은 관료와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특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줄이고 기초연금을 새로 도입한 2007년의 경우 모두의 노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개혁이었음에도, 정작 시민들은 그 내용은 물론 그런 연금개혁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획득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빈약했다고 할 만하다. 정책엘리트는 시민에게 참여할 정책공간을 내어주지 않았고, 연금이란 사회보장제도의 의사결정에서 시민은 오랫동안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민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노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체감하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21세기에 지식의 벽은 과거처럼 높지 않다. 전문가의 안내가 있다면 시민은 연금에 관한 여러 지식‘들’의 일관성과 현실 문제 대응력을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의 시민은 수동적인 시민의 역할만 맡을 만큼 그렇게 조용하고 냉담한 사람들이 아니다.
국회에서는 2024년 연금개혁 공론화를 위해 1단계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연금개혁에서 무엇을 다룰 것인지 의제를 정하도록 했고, 2단계로 시민 500명이 약 한 달 동안의 학습과 토의를 통해 연금개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국회는 이러한 공론화 결과를 정책 결정에 반영할 것이라 했다.
보편적인 시민권을 갖춘 정치체제였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정책 결정의 장에서는 밀려나 있던 시민이 이렇게 2024년에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되었다. 시민은 공동체를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공론화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에서 주변적인 역할을 벗어났고,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불과 얼마 전 봄의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시민대표단 다수는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도 강화하자는 주장, 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13%로까지 올리는 방안을 지지했다. 노인빈곤율이 40%에 달하는 사회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계속 떨어지도록 방치해 놓고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노후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노후보장을 최소화시켜 놓고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말하기 어렵다.
공은 국회로 넘겨졌지만 21대 국회는 결국 연금개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 여야 간 합의 시도는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실 합의 실패라는 결과보다는 주요 정당들의 합의 과정이 시민대표단의 결정을 충분히 존중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국회의 연금개혁 과정이 멈칫하는 사이 정부는 국민연금은 복지가 아니라는 의아한 견해를 내놓았다. 일각에선 국민연금 해체 시도에 가까운, 신연금을 만들자는 주장까지 설파하고 있다. 낮아지는 국민연금 급여와 미래재정 문제는 사연금상품의 마케팅 포인트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22대 국회의 연금개혁 논의는 시민 참여가 수반된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연금개혁의 필요성 때문인 동시에, 특권적 엘리트 대신 충분히 학습한 시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는 숙의민주주의 가치 때문이다. 시민대표단의 결정이 연금개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이런 민주주의를 믿겠는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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