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국민투표가 필요하다

기자 2024. 6.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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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힘을 가진 의회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버티고 있는 행정부
헌정의 정상적 작동은
이미 중단된 상태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바로 국민들이다
모든 해결의 실마리는
윤 대통령의 손에 있다
배짱이 필요하다
본인과 주변 비위 사실을
먼저 깨끗이 씻으라
또 하반기 정책 과제로
큰 걸 내놔야 한다
그것으로
국민투표에 나서라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의 봉기와 노동자들의 동조로 그해 5월 파리는 완전한 ‘해방구’ 상태였다. 이에 당시 드골 대통령은 초강수를 두었다.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선언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공산당의 역사적 배신’으로 결국 우파가 다수 의석을 점하게 되었으니, 드골은 자기의 통치력의 정당성을 회복한 셈이었다. 하지만 드골은 대통령 자리라는 것이 의회에서의 다수 의석으로 안일하게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파리를 시작으로 프랑스 전국을 휩쓴 저항의 물결로 그의 대통령 자리 정당성은 심각하게 위협을 당한 상태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민들의 ‘일반의지의 총화’라는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그는 다음 수순으로 넘어간다. 그는 1969년 상원 개혁과 지방분권을 쟁점으로 내걸고 국민투표를 소집했으며, 이에 자신의 대통령 재신임 여부까지 결부시킨다. 결과는 53%의 (드골 측의) 패배였다. 드골은 곧바로 사임한다.

탄핵은 민주국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는 혁명이나 쿠데타와 같은 헌정 중단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헌법에서 마련한 헌정 스스로의 자정 장치로서, 보수적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교과서와도 같은 미국 헌법에서조차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다. 대통령이 꼭 반역죄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행동’만 저질러도 바로 발동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이 탄핵 조항이다. 옛날 같았으면 또 봉기와 총질과 교수대와 같은 혼란이 벌어질 일을, 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점잖게 직위에서 내려보내도록 한 아주 유화적 성격을 가진 장치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5년짜리 왕’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탄핵이라는 행위는 반역 혹은 혁명에 해당하는 전복적 행위로 여겨질 때가 많다. 그렇지 않다. 탄핵은 어원상 ‘공격’이 아니라 ‘발목잡기’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5년짜리 임기직 공무원’이다. 다른 공무원이나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법 절차에 따라 직무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이 내려지면 얼마든지 직위 해제될 수 있는 대상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20년까지의 30년 동안 63개국에서 132명에 달하는 국가 수반들이 272건의 탄핵소추를 당한 바 있다.

용산의 윤석열 정권은 지금 두 가지 문제 모두에 봉착해 있다. 첫째, 의회와의 관계는 전쟁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2년간 거부권을 행사한 숫자는 14회에 달한다.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의회의 선거로 표현한 ‘일반의지’와 대통령 선거로 표현한 ‘일반의지’가 이렇게 맞서 싸운다면 무엇이 ‘일반의지’인가? 따라서 얼마 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는 이 문제를 판가름하는 장이었고, 결과는 정권과 여당의 대패였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같은 인물이었다면 바로 하야를 선언했을 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차고 앉아 의회에 대한 거부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하야 이유 스스로 뒤집어쓴 형국

둘째, 더욱이 거부권 행사 때문에 탁구공처럼 의회와 정부를 오고 가고 있는 법안은 바로 다름 아닌 윤 대통령 본인과 주변의 비위 사실에 대한 건이다. 채 상병 사건과 김건희 사건에 대해 부당한 개입을 했다면, 이는 분명한 ‘부당한 행동’이다. 그런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더 부당한 개입을 행한다면 이는 옛날 미국 닉슨 대통령의 경우처럼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탄핵 사유가 된다. 여기에 윤 정권은 더 큰 도박을 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국회가 발의한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참으로 신통하게 하나로 결합해 스스로 뒤집어쓴 형국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의회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버티고 있는 행정부. 헌정의 정상적인 작동은 이미 중단된 상태다. 체스 시합으로 보자면 어느 쪽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테일메이트, 그야말로 교착 상태인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도의 산업사회 대한민국의 모든 산적한 문제들이 이 한심한 교착 상태에 막혀 큰 진전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풀 결단은 언제나 대통령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대충 군림하면서 외국 순방이나 다니는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그렇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나라 전체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다음의 두 가지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의 조치는 말할 것도 없이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포함한 정권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일체의 의혹을 남김없이 씻는 일이다. 그리고 둘째는 국민투표이다.

둘째부터 이야기하겠다. 집권 후반기에 추진하고자 하는 큰 규모의 구상을 국민들에게 내보이고 이에 대한 지지를 구하는 국민투표를 공표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국회의 힘 균형에서 궁지에 몰리자 1989년 초 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중간투표를 기획하기도 했다. 물론 성사되지는 않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투표로 뒤집는 것이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반대가 유효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본인의 재신임 여부를 묻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도대체 14번의 거부권을 행사해가면서, 한 해에 56조원의 재정적자를 내가면서 정권 후반기에 이루고자 하는 큰 계획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자는 것이다. 그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윤 대통령도 남은 2년 반 동안 국회의 ‘발목잡기’를 뿌리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얻을 것이다. 드골 대통령이 내걸었던 ‘상원 개혁과 지방분권 문제의 재정립’만큼, 헌법 질서와 관련이 있는 큰 문제여야 한다. 단, 개헌은 안 된다. 헌법이란 법률의 틀이며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다수의 통일된 의지가 표출되어야 하는바, 지지율 21%짜리 정권이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2015년 말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정권이 꾀했던 개헌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꼼수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며 헌정사에 있어 한 정권의 실패보다 훨씬 더 오래가는 또 근본적인 폐해를 남기게 될 것이다.

“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진다”

이제 첫 번째 과제이다. 본인과 주변의 ‘잘못된 행동’에 관련된 모든 의혹에 대해 겸허히 내려놓으라. 이쪽이건 저쪽이건 지배층이 ‘내로남불’로 일관하면서 자기들의 특권을 있는 대로 휘둘러 돈과 재산과 특권과 온갖 좋은 것을 다 거머쥔 이야기는 지겹다 못해 신물도 나지 않는다. 내가 왜 저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모셔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자기들끼리 싸움거리를 만들어 3년을 이 상태로 질질 끌려는 각이다. 이것이 지금 적지 않은, 아니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권태와 절망이다. 정치권은 이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제도화된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빠져 한결같이 이를 모두 외면하고 있다면, 최종적으로 나서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권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의혹을 씻으라. 그리고 정권 후반기의 청사진과 굵직한 국민적 과제를 제시하고 국민투표로 돌파하라.

첫 번째 과제만 해결해도 닉슨과 같은 역사적인 악한이 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다. 두 번째 과제까지 해결한다면, 잘되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며 아주 나쁜 경우라고 해도 최소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만큼의 품위와 위엄은 지킬 수 있다. 지금 모든 해결의 실마리는 윤 대통령 손에 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고 믿는다. 쿼터백이 제때 판단을 못하면, 나서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하면, 누가 덤벼든다고 겁을 집어먹고 쫄아버린다면, 팀이 무너진다. 그 팀은 용산도 여당도 또 정치권도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이다. 배짱이 필요하다. 먼저 깨끗이 씻으라. 그리고 하반기 정책 과제로 큰 걸 내와야 한다. 그것으로 국민투표에 나서라.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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