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과 오물이 오가는 한반도, 해결할 방법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24. 6. 3. 1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19) 때아닌 '풍선 대란', 국제법에 해결책이 있다

국제법적으로 보면 한국과 조선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다. 그런데도 가장 적대적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와 대남 오물 살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깝기에 풍선에 전단이나 오물을 넣어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 수월하다. 또 적대적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전시도 아닌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남과 북이 모두 유엔 회원국인 만큼 양측이 국제법을 존중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합동참모본부(합참)은 5월 29일 "북한의 행위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북이 남에 보낸 풍선 자체도 그렇고 거기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 담겼기에 이러한 규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방주의나 '내로남불'의 태도로는 문제 해결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은 합참의 입장 발표 직후 내놓은 담화를 통해 "한국 것들은 우리에 대한 저들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떠들고 그에 상응한 꼭같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남과 북은 모두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 우선 유엔 헌장에선 회원국의 주권 존중을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방의 영토와 영공에 전단·오물이 담긴 풍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주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전단의 내용이 적대적이고 평화를 해치는 경우에 그러하다.

남과 북이 모두 가입한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도 표현의 자유에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타인의 권리 또는 신용의 존중",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 보건, 도덕의 보호"등을 의무와 책임으로 열거하면서, 이에 근거해 표현의 자유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과 북은 또 국제민간항공협약(ICAO) 가입국이다. 이 협약에는 허가 없이 타국 비행체가 가입국 영역 상공에서 비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ICAO가 정의한 비행체에는 '무인기구', 즉 풍선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남북은 모두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남측이 보내는 건 인도적인 물품이고 북측은 쓰레기를 보낸다며 차별성을 부각하려고 하지만, 일부 대북단체가 보내는 물품에는 김정은 정권 타도를 위한 주민 봉기를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호 비방·중상 중단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이고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합의의 기본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는 거꾸로 쌍방이 국제 규범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작년 9월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 침해가 지나치다"며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위헌 판정을 내린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헌법 제6조 1항에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되어 있는데, 위헌 판정을 내릴 때에는 상기한 국제법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헌재가 이런 태도를 보인 데에는 헌법상 조선도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점이 참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북의 행동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며 중단을 요구하는 것도 설자리가 좁아진다. 관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까닭이다.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 특수론'이 사실상 파탄나면서 남북관계의 모순과 긴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지만, 유엔 헌장을 비롯해 남과 북이 모두 인정한 국제법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는 있다. 국제법적 접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대성을 완화하고 평화 공존의 토대를 만드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때아닌 ‘풍선 대란’은 이를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풍선 대란'이 주는 또 한 가지 상식적인 교훈이 있다. 상대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게 결코 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여 윤석열 정부가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는 것이나, 김정은 정권이 오물 풍선 살포 잠정 중단을 발표하면서도 남측에서 또다시 전단을 살포하면 백배로 되돌려주겠다는 식의 위협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쌍방이 자제하면서 국제법에 충실해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 지난 5월 29일 오전 3시께 충남 계룡시 두마면의 한 도로에서 북한이 날려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이 발견돼 군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사진은 현장에서 발견된 풍선 물체. ⓒ연합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