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은 허용, 국시 연기는 불허... 정부, 의정갈등 출구전략 시동
복귀·사직 인원 구분해 추가 인력 채용 가능
"전공의 다 사직하면 어쩌나" 반대 목소리도
정부가 전공의 사직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의 출구전략 모색에 나섰다. 지난 2월 전공의 1만 명가량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를 내고 이탈하자 정부는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내리고 이들의 복귀를 압박해왔는데, 명령을 철회하고 수련병원에 사직서 수리 결정을 맡기는 방식으로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모양새다. 정부가 '병원 자율'을 명목으로 사실상 전공의 전원 복귀 방침을 철회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이 같은 정책 전환이 전공의들의 대대적 복귀와 내년 초 전문의 시험 응시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를 벗어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3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철회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실장은 "병원장 간담회에서 사직서 처리 권한이 병원으로 돌아오면 상당수 전공의를 복귀시킬 수 있다는 의견과 요청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수련병원에 사직서 처리 권한 부여
정부가 수련병원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명령을 철회한다면 각 병원장이 소속 전공의를 상대로 복귀를 설득하고 수련 의지가 없다면 사직 처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전공의 복귀 인원이 정확히 파악되면 병원이 대체 인용 채용 등으로 운영 정상화에 나설 여지가 생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여전히 병원에 적을 두고 있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인력 충원을 할 수가 없다"며 "돌아올 사람은 오고 나갈 사람은 나가고, 지금 상황이 정리돼야 전문의를 늘리든 전공의를 줄이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전공의에 내린 행정명령을 철회하지 않겠다던 정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행정처분을 앞세운 압박만으로는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계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 직후부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업무개시명령, 진료유지명령 등을 내리고 명령 위반 책임을 물어 의사면허 정지 처분에 돌입했지만, 지난달 30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출근율은 8.4%(1만509명 중 879명)에 그치고 있다.
병원이 사직 처리 권한을 갖고 전공의 복귀 의사를 타진한다면 소통이 좀 더 원활할 거란 기대도 작용한 걸로 보인다. 정부는 각 수련병원에 지난달 말까지 소속 전공의를 전원 개별 면담해 복귀 의사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성과는 적었다. 전 실장은 "수련병원 70%가량이 상담 결과를 제출해 취합 중인데 상담에 나선 전공의 비율은 10% 미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경직된 분위기에서 정부는 한발 물러서고 의사 인력 회복이 급박한 병원 측이 유연하고 전향적인 보상을 제시할 경우 전공의 복귀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도 전공의들이 병원에 돌아온다면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의대생엔 "국시 연기 없다" 강경책 유지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의 명령 철회로 강제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직서가 수리되면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올 유인이 아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수련병원 원장은 "사직서 수리에 대해 병원장마다 의견이 다르다"며 "안 돌아오겠다는 사람 붙잡을 방도도 없는데, 사직서 수리가 가능해지면 전공의가 다 떠나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철회가 함께 발효된 다른 행정명령의 적법성 시비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초 이들 명령이 위법하다며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정부는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맞서왔다. 다만 명령 철회가 소송에서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성주 의료전문 변호사는 "사직 금지 명령을 철회하면 관련 행정소송은 각하될 것"이라며 "사직하게 해달라는 소송인데 이미 정부가 명령을 거뒀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복귀 유도 대상인 의대생에 대해선 정부는 일단 원칙론을 유지했다. 의사 국가시험(국시) 연기는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정부는 이날 "9월 2일부터 11월 4일까지 국시 실기시험을 진행한다"며 시행계획을 공고했다. 국시는 6개월 이내 졸업이 예정된 의대생이 응시할 수 있는데, 현재 의대 본과 4학년생은 대거 수업 거부에 동참하고 있어 졸업 여부가 불투명하다. 전 실장은 "의대생들이 의사 면허를 정상적인 시기에 취득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조속히 수업에 복귀해 내년 2월에 졸업 가능한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복귀를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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