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황당무계한 ‘저출생 발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 간행물에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학생의 1년 조기 입학’이 제시된 보고서를 두고 주말 내내 온라인이 시끄러웠다. 남녀 간 발달속도를 고려해 여성의 입학연령을 앞당기면 결혼 적령기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란 논리인데 무엇보다 ‘어린 여성이 이성적 매력이 있다’는 성차별적인 시선이 거슬린다.
이 주장은 조세연이 발간한 ‘재정포럼’ 5월호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를 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인구 문제를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로 정의했다. ‘여성 조기 입학’은 ‘남녀 교제 성공 지원 정책’을 설명하면서 나왔다. 장 연구위원은 비혼 출산을 혼인 출산과 적대적 관계로 상정하고,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인들을 외국으로 보내자는 주장도 내놨다. 향후 정부의 인구정책 평가를 전담하게 될 조세연이 이런 성차별·연령 차별적 발상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는 게 기가 막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저출생 대책들 중에서도 황당무계한 사례들이 속출한다. 서울시의회 김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케겔 운동’을 저출생 대책으로 내놔 빈축을 샀다.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서울시 시민건강 출생 장려 국민댄조 한마당’ 행사를 열었는데 비판이 쏟아지자 3일 행사를 중단했다. 서울시의 정·난관 복원 시술비 지원 사업, 대구시 ‘스마트 자가정자진단기’ 배포 사업도 매한가지다. 저출생 문제는 한국 사회의 근원적 혁신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일 텐데, 이런 뉴스들이 나올 때마다 눈을 감고 싶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부장 국가 길리어드에선 출산을 국가가 통제한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이 나라에서 여성들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자궁’ 취급을 받는다. 한국의 현실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조세연 보고서 외에도 저출생이 ‘여성의 고스펙 탓’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행정안전부의 ‘출산지도’를 보면 소설 속 불쾌한 미래가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건 자아가 강해진 여성들 때문이 아니다. 아이 낳으라 대신 한국 사회가 아이 낳을 만한 세상인지 물어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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