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아빠가 될 수 있게 해줄게 [세상읽기]
김현성 | 작가
나흘 전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신생아 한명으로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바로 2023년 0.72명을 기록한 대한민국의 파멸적 저출산이다. 출산율은 ‘청년과 여성이 그 공동체에 매기는 별점’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즉 우리 공동체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혼과 출산은 사치품이 되었고, 회피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다. 별점 0.72점의 낙제점 공동체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회피하는 결정을 굳이 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제 대단한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재생산을 위해 그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분명 우리나라는 과거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는데, 왜 공동체 구성원들의 선택은 우리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가느냐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미래’를 위해 하는 선택은 현재의 부유함 수준과는 관계없이, 과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존재하기는 하는가라는 사실에 달려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앗아 가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은 하나의 ‘표준’이 사회가 가진 자원을 배분하는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입시는 취업을 통한 경제력 배분의 유일한 수단이 된 지 사실상 오래되었고, 백약이 무효하다는 탄식이 나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간다. 구성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시나브로 서울과 수도권이 단 하나의 표준이 되어, 모두들 서울로 수도권으로 모여들기에 바쁘다. 자원은 점점 더 한정되어가는데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규칙은 오직 하나뿐이니, 단 하나뿐인 규칙에 달라붙은 경쟁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무한 경쟁이 공동체를 지배하게 되면, 각자도생과 힘의 논리가 ‘능력주의’의 탈을 쓰고 횡행하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최악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오히려 “과거와는 달리 동일 직급에서 동일 임금을 지급하니 성차별은 없다”는 궤변이 기승을 부린다. 인구가 격감하는 미래 세대에 국민연금은 개혁이 급선무이지만, 청년 1명이 노인 3~4명을 부양해야 하는 정해진 미래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뒤에 숨어 있고, 제1야당은 미래를 위한 대안보다는 ‘당원이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만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지리멸렬한 시대에 모두가 비관과 우울함을 품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키울 결심을 한 이유는, 우리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다면, 낙관하려 애써야 하고, 또한 그 낙관이 실현되도록 애써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공동체에는 미래를 짊어지고 헤쳐 나갈 세대가 물리적으로 존재해야만 지금 시점에서 대안을 설계하는 의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한 대안은 다양하다. 우선 서울·수도권과 입시가 독점하고 있는 사회 표준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지출 비중, 특히 국민연금 재정 투입 및 사회분야 지출 비중을 늘려 과감하게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경쟁을 줄여 청년 세대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즉 청년들에게 ‘부모가 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모두의 주머니를 조금씩 헐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주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고통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없다.
결국 우리 공동체에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를 각자도생이라는 환경에 처하게 만든 이 사회를 목 놓아 비판하면서도, 결국 아이를 위해서는 그늘이 되어줄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과감하게 다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는 것이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신생아실 창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너도, 아빠가 될 수 있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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